밤 8시, 밴쿠버 외곽 시골 마을의 작은 코너스토어 불빛이 조용히 꺼지면 계산대 카운터는 작은 디지털 스튜디오로 변신한다. 고요한 공간, 늘 옆을 지키던 기타가 주인의 손길을 받아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아티스트 김대근 ‘Sounds from My Day’.

30년 전 한국을 떠나 밴쿠버에 정착한 이후, 그는 디자이너로, 스시를 만드는 자영업자로 삶의 수많은 국면을 지나왔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장애를 입고 오랜 시간 무대를 떠나야 했던 시련도 있었지만, 삶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다.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도전을 시작하라고, 나지막한 응원을 건네는 그의 진솔한 고백에 귀를 기울여본다.
Q1. 30년 전 한국을 떠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결심하게 되셨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가슴에 품었던 꿈이나 기대가 궁금합니다.
30년 전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1992년 가을부터 한국의 리딩 광고대행사 ‘오리콤’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카프리’라는 한국 최초의 누드바틀 맥주의 라벨디자인을 진행중이어서 충무로에 나가 외주 업체와의 협의를 자주 할 때인데 그 거리에서 한 이주공사 직원이 캐나다 이민 홍보를 하고 있더군요. 직장인들이 많은 거리이기에 점심시간 공짜 햄버거를 제공한다는 이민 세미나에 들렀었는데, 그 작은 우연이 계기가 되어 결국 캐나다 이민의 새로운 카테고리였던 ‘독립이민’ 1호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품었던 꿈은 거창한 성공이라기보다, 낯선 곳에서 제 힘으로 새로운 삶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도 제가 가진 감각과 기술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민자의 삶은 꿈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다시 처음부터 나 자신을 증명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도 현실이었습니다. 돌아보면 밴쿠버에서 보낸 지난 30년은 제가 계획했던 길을 곧게 걸어온 시간이 아니라, 삶이 내미는 새로운 길을 그때그때 받아들이며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이민자 분들은 자녀 교육이나 보다 나은 자연환경 등에 목표나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면 저에게는 그런 큰 목적이나 목표의식이 없이 왔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생활력과 근면 성실함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늘 환경에 잘 적응하고 그 안에서 늘 바르고 옳은 길을 찾아내어 살아왔습니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스시를 만들고, 그동안에도 그레이스 한인교회의 찬양팀에서 기타리스트로 섬겼고 취미로 밴쿠버 아빠밴드와 도시락 밴드로서 공연도 여러 차례 해왔었습니다. 그러다 코너스토어를 운영하던 중, 큰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뒤 공연은 어려워졌고 이제 AI를 만나 디지털 음악으로 돌아오기까지 참 많은 길을 돌아왔습니다.
Q2. 밴쿠버에 정착하신 후 ‘비주얼액션그래픽스’를 운영하시며 교민 사회의 수많은 로고와 광고 디자인 작업을 맡으셨습니다. 타향에서 커리어를 개척해 나가던 초창기 시절의 기억이나 가장 마음에 남는 작업이 있으신가요.
한국에서는 오리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고, 캐나다에 온 뒤에는 ‘비주얼액션그래픽스’를 설립해 약 17년 동안 디자인 일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자료를 쉽게 찾거나 소통할 수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초창기에는 디자인 실력뿐 아니라 신뢰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이민 사회에서 로고와 광고는 단순한 그림이나 인쇄물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식당 하나, 가게 하나를 시작하는 교민들에게 그것은 가족의 생계가 걸린 새로운 출발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하는지를 이해한 뒤 그것을 하나의 이름과 이미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길을 다니다가 제가 만든 간판을 마주치거나, 제가 디자인한 로고를 오랫동안 사용하는 업체를 볼 때면 단순히 ‘내 작품이 남아 있다’는 것 이상의 감정이 들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시작한 누군가의 꿈에 제 손길이 조금이나마 함께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자면 3가지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동안 참 많은 디자인을 해 드렸지만 그 사이 없어진 업체들이 70퍼센트 이상 될 겁니다. 아쉽지만 디자인이 오래 남는다는 뜻은 그 기업이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의미겠지요.
1. 밴쿠버 한인 신용 협동조합 (웹디자인 등)
1996년부터 2014년까지 한인신협의 모든 그래픽 작업을 도맡아 했습니다. 통장 디자인에서 부터 포스터, 연차보고서 그리고 웹사이트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맡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 이민 생활의 가장 큰 지원군이자 클라이언트였습니다.
2. 밴쿠버 한인 침례교회 로고
지금도 침례교회의 로고를 보면 그 로고 디자인을 위해 다녔던 새벽기도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 그레이스 한인교회에서 부목사로 계시던 최혁 목사님이 부임하시면서 의뢰하셔서 오랜 기도와 찬양 끝에 만들어낸 로고이기에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3. 밴쿠버 김대건 천주교 성당 로고
오리콤 대선배이신 한희완 이사님이 제안해주셔서 작업한 로고 입니다. 김대건 신부의 갓쓴 모습을 드로잉해 오셔서 그것을 모티브로 디자인했고. 지금도 밴쿠버 유일 한인 성당의 로고로 쓰이고 있음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밴쿠버 이곳 저곳에 제가 만든 로고들이 꽤 보입니다.
돌이켜보면 비주얼액션그래픽스는 디자인 회사이면서 동시에, 밴쿠버 한인 이민자들의 수많은 시작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장소였습니다. 저 역시 그분들의 꿈을 디자인하며 제 삶의 자리를 만들어갔습니다.
Q3. 교민 사회에서 디자이너로 입지를 다지셨음에도 14년 전 미션 지역에서 ‘코너스토어’를 시작하며 완전히 다른 커리어로 전환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코너스토어를 시작한 데에는 가족의 생계를 안정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습니다. 디자인만 하며 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민자의 삶에서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늘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 한참 작업 중이던 웹사이트 디자인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을 시기이기도 하고 많은 후배 디자이너들이 활약을 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너무 떨어져 창작의 의욕이 떨어졌을 시기입니다.
그렇게 밴쿠버를 떠나 미션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코너스토어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14년 넘게 살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게는 하루도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고, 주말이나 휴일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스시를 만들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작은 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콧물을 흘리며 부모 손을 잡고 오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가 되어 자기 아이와 함께 찾아오고,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손님들이 들어와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가게 앞에서는 동네 고양이 오레오가 손님을 맞이하고, 이웃의 말과 트랙터와 큰 트럭이 지나갑니다. 그렇게 저는 마을의 세월을 카운터 너머에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큰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지 않았다면 이 일을 이렇게 오래 계속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가게는 제 생계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제 음악과 이야기가 태어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낮에는 손님을 맞고, 손님이 없으면 카운터 옆에 놓인 기타를 연주합니다. 밤 8시에 문을 닫으면 낮에 계산대였던 자리가 작은 디지털 스튜디오로 바뀝니다. 처음에는 음악을 떠나게 만든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오히려 지금의 음악을 만들어준 장소였습니다.
Q4. 시각 예술과 미각 예술, 그리고 청각 예술은 얼핏 달라 보이지만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스시맨으로서의 경험이 이번 음악 작업에 어떤 영감이나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디자인과 요리와 음악이 서로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 가지 모두 흩어져 있는 재료를 골라 하나의 완성된 경험으로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수많은 색과 글자 가운데 꼭 필요한 것만 남겨 메시지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스시는 좋은 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각각의 균형을 맞추는 일입니다. 음악 역시 멜로디와 가사, 악기와 목소리를 무조건 많이 넣는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 음악과 가사도 가능하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짧은 한 문장과 단순한 멜로디 안에 제가 살아온 시간과 감정을 담으려 합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배운 절제와 구성, 스시를 만들며 익힌 균형과 반복의 감각이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세 일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누군가의 눈에 닿아야 하고, 음식은 누군가가 맛보아야 하며, 음악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야 합니다. 결국 제가 평생 해온 일은 형태만 달랐을 뿐,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일이었습니다.
Q5. 2016년 도시락 밴드 공연 이후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큰 시련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무대를 잠시 떠나야 했던 그 시기는 선생님께 어떤 시간이었는지, 또한 그 힘든 터널을 지나오기까지 힘이 되어준 존재가 있었다면.
도시락 밴드로 무대에 섰던 당시에는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사고를 당했고, 왼쪽 발뒤꿈치와 무릎 등을 크게 다쳐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몸이 다친 것도 힘들었지만,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특히 저는 스튜디오 기타리스트가 아닌 공연을 선호하는 스테이지 기타리스트였기에 무대에서 절뚝거리는 모습으로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고는 몸만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생각했던 미래까지 멈춰 세웠습니다. 음악과 무대도 멀어졌고, 살아남기 위해 가게를 지켜야 했습니다. 한동안은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질문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가장 큰 힘은 가족과 신앙이었습니다. 제 곁을 지켜준 아내와 가족이 있었고, 절망 속에서도 저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주님이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다시 이끄셨다”고 고백합니다.
몸이 예전으로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두렵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회복이라는 것이 반드시 사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달라진 몸과 환경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는 것, 그것 역시 회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다시 기타를 들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음악은 제가 잃어버린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달라진 저 자신으로 다시 살아가는 길이 되어주었습니다.
Q6. 오랜 시간 선생님의 무대를 그리워한 팬들과 교민들에게 이번 앨범은 어떤 마음을 담은 ‘선물’인가요? 작업 과정 또한 궁금합니다.
이번 앨범들은 “제가 다시 돌아왔습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앨범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 안에서 음악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조용히 들려드리는 앨범입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코너스토어를 운영합니다. 아침에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음식을 만들고, 물건을 정리합니다. 손님이 없는 잠깐의 시간에는 가게 카운터 옆에 늘 놓여 있는 펜더 기타를 잡습니다. 밤 8시에 문을 닫은 뒤에는 POS 컴퓨터가 놓인 그 자리가 제 작업실이 됩니다. 곡을 만들고, 녹음하고, 편집하고, 때로는 새벽까지 소리를 다듬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일들을 소리로 써내려갑니다 그게 ‘Sounds from My Day’라는 아티스트 이름이 되었고 유튜브 채널의 이름입니다.

예전처럼 좋은 스튜디오와 많은 연주자들이 모여 앨범을 만드는 방식은 아닙니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과 AI 음악 도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어떤 가사를 쓸 것인지, 어떤 감정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출발은 모두 제 삶입니다. 기술은 제 안에 있는 이야기를 소리로 옮겨주는 새로운 악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느라 꿈을 포기한 분들에게 건네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불편해지고 생업에 매여 있어도,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증거가 되었으면 합니다.
Q7. 이번 앨범에 영감을 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첫번째 앨범 작업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역시 가게 손님입니다. 첫번째 앨범 ‘Mani on the prairie’ 중 ‘Lennon & Brinley’ 라는 자매가 어느 Fathers day에 제게 선물한 오래된 ‘KISS Dynasty’ 앨범을 기억하고 또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그들에게 들려주고자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에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하나 둘 들어가면서 12곡짜리 앨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가장 큰 영향은 가족입니다. 특히 최근 장인어른께서 세상을 떠나셨던 일이 음악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아내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한국으로 갔지만, 저는 가게를 비울 수 없어 캐나다에 남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함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 마음 무겁고 미안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악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장인어른을 추모하는 노래 ‘아버지, 그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가사 중 “이제 누구에게 아버지라 부를까”라는 말을 쓰다가 문득 제 마음속에 “이제 하나님 아버지만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십자가로 이어졌고, 결국 ‘십자가, 내 삶의 고백’이라는 앨범으로 발전했습니다.
아내는 장례를 마친 뒤 제게 “이번에 배운 것은 살아 있을 때, 힘이 있을 때 힘껏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죽음과 이별을 겪으며 시작된 음악이지만, 결국 이 앨범이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누군가의 부재에서 시작된 노래가 다시 살아갈 힘을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앨범은 제게도 아주 특별한 작품입니다.
Q8. 새 앨범에서 ‘여성자신’ 독자들과 교민 여러분들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타이틀곡 혹은 가장 애착이 가는 한 곡과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알고 싶습니다.
지금 유튜브에는 8월 22일 발매된 곡이 올라와 있는데 역시 가장 먼저 들려드리고 싶은 곡은 앨범과 같은 제목의 ‘십자가, 내 삶의 고백’입니다. 이 노래에는 이런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 오직 십자가
내 삶의 이유, 내 삶의 희망
십자가 오직 십자가
내 삶의 고백, 주님의 십자가.”
2017년 큰 사고를 당하고 장애를 갖게 된 뒤, 제 삶은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저를 놓지 않으셨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다시 이끄셨습니다. 이 노래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승리의 선언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장애를 안고 살고 있고, 여전히 두렵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제 삶의 길 위에서 끝까지 바라볼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누군가가 이 노래를 들으며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아직 내 삶에도 다시 걸어갈 이유가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제 이야기를 담아 만든 노래지만, 듣는 분들 각자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9. 이국땅에서 가정을 책임지며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면 삶의 열정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이민 30년 차 인생 선배로서, 그리고 삶의 굴곡을 이겨낸 음악인으로서 이민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한 마디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먼저 음악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끄럽고 그저 음악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저씨 정도의 표현이 적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민자로 30년을 살면서 가족을 책임져야 했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선택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제 꿈은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디자인은 음악의 감각으로 남았고, 스시를 만들며 익힌 균형은 곡을 만드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작은 코너스토어는 제 노래와 이야기가 태어나는 작업실이 되었습니다. 삶에서 돌아간 길은 있었지만, 버려진 시간은 없었습니다. 특히 가족을 책임지는 아빠들은 자신의 꿈을 뒤로 미루는 데 익숙합니다. 가족을 위해 참고 일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으면서도,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다시 시작해도 됩니다. 큰 무대가 없어도 되고, 완벽한 환경을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다시 붙잡아 보십시오.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온 우리의 시간은 꿈을 포기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은 언젠가 더 깊은 이야기를 만들어줄 재료입니다. 저 역시 사고 이전과 같은 사람이 되어 음악으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사고와 장애, 가족과 생업, 이민자로 살아온 모든 시간을 품은 채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삶이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고 해서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가장 감사한 날일 수 있고,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훗날 누군가를 위로하는 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고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남아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SoundsfromMy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