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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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에 대한 소고

자명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무엇일까? 각 나라의 언론사 또는 문화를 연구하는 기관에서 종종 이런 주제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중 모든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단어는 ‘엄마’였다. 세대와 종교, 여러 국가의 조사에 따라 다르긴 해도 어머니는 부동의 1위였고 그 다음이 사랑, 열정 순위였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먼저 배운 말은 엄마이고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부른 대명사이자 포근하고 친숙한 단어이기에 누구나 공감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두 번째로 꼽은 ‘사랑’ 이라는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님께 가장 하기 어려운 말로 뽑히기도 했다. 외적 표현의 서양문화와 달리 내적감성에 익숙한 우리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내게 아름다운 단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곰곰 생각하며 써내려가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로 적은 단어는 ‘겸허’였다. 겸허 그 속에는 존중과 성찰의 의미가 크게 함축되어 있고 인간에게서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겸허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겸손과 겸허는 언뜻 보면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분명 다르다. 겸손은 남에게 보여주는 행위에 가깝고 겸허는 스스로 행하는 내적사고의 가치관이다. 겸손은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본심과 다르게 타인에게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겸허는 성찰을 통해 자연스레 익혀지는 그 사람의 품격이라 할 수 있다. 겸허와 같은 뜻이 담겨 있으면서도 겸손은 겸허의 내공이 묻어있지 않으면 부자연스럽고 행동이나 언행이 한결같지가 않다.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에서 겸허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수도자의 끊임없는 구도의 길과 같아 결코 쉽지가 않다. 자신의 경계에서 잠시만 소홀하고 방심하면 쉽게 메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자기기준으로만 모든 걸 판단할 수 있어서다.

어느 봄 날 부산 대청동 작은 암자로 한 스님을 찾아갔다. 내가 활동하던 문학 동인에서 창작 강의를 해 줄 강사를 초빙하기 위해서였다. 도심 한 복판 언덕배기 작은 암자에 기거한 시인이자 스님인 원광은 조용히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전화로 찾아갈 목적을 방문 전에 말했기에 별다른 말없이 스님은 작은 방으로 안내 후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생전처음 차를 접하는 순간이었다. 티백 현미 차에 차를 우려본 적은 있었지만 다관에 차를 내리는 건 처음이었다. 비교적 큰 찻잔에 차를 따르고 스님은 양손을 곱게 모아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스님을 따라 부자연스럽게 차를 맛본 나는 그 밋밋한 맛을 계속 마실 수 없어 “스님 설탕은 없는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참 설탕이 어디 있더라” 하시며 부엌에서 설탕을 가져다 주셨다. 커피처럼 현미녹차에 설탕을 타 마셔본 것이 전부였기에 그렇게 스님께 주문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웃을 수조차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차에 대해 무지한 나를 무안하게 하지 않게 스님은 말없이 설탕을 찾아다 주셨다. 우리 전통 차에는 그 어떤 것도 섞지 않아야 한다고 교육하지 않았고, 상대의 입장을 그대로 존중해 주신 것이다. 내공이 켜켜이 쌓인 겸허가 몸에 익숙한 자의 배려에서 나온 진면목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 볼수록 진심어린 겸허와 배려를 느끼게 하는 품격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원광스님은 시인이자 차를 매개체로 세상과 호흡했고 소통의 도구로서 몸소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신 분이었다. 부산불교문인협회 초대회장을 지내면서 군사독재시절 소통이 단절된 대중과 대화했고, 암울한 시대에 글을 통해 저항한 의식 있는 분이었다. 우리 전통 차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차 전문지 ‘다심’의 발행인으로 차 문화를 널리 전하며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자했다. 다인의 기본은 겸허한 자세가 일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대로 실행한 분이다.

그 때의 차와 인연으로 지금까지 나는 다인으로 차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돌아보면 내 삶의 궤적에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많다. 겸손과 겸허의 자세를 일깨워준 분들이 있었고 배려가 어떤 것인지를 실행으로 가르쳐준 지인들이 곁에 있어 주었다. 참으로 감사하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겸허를 두 번째 아름다운 단어로 써 내려간 것도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겸손과 겸허란 단어를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안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몇 가지가 응집되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상대의 다름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포용의 자세로 성찰하는 시간들이 겸허를 익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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