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은 호흡에 의해 움직이는 장기이기 때문에 암 조직에 방사선을 정확히 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장기의 움직임을 고려해 환자의 자세와 호흡 훈련, 치료 범위 설정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이익재 연세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교실 교수(세브란스병원 진료혁신부원장)는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난 5월 시작한 간암 중입자 치료의 핵심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현재 간암 치료법은 크게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로 나뉜다. 중입자 치료는 무거운 탄소 입자를 활용한 방사선 치료의 일종이다. 방사선이 정상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암 조직에만 강력한 방사선 에너지를 쏟아붓고 빠르게 사라지는 ‘브래그 피크’ 현상을 활용한다.
“회전형 치료기 안에 환자 누우면 최적 각도로 회전···계획대로 암세포 타격”
“360도 각도에서 조사 가능···정상 장기 보호하고 종양 치료 정확도 극대화”

연세암병원이 지난 5월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를 가동하며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간암은 빠른 발견이 어렵다. 간에 신경세포가 적어 염증이나 간암이 발생해도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한다. 바이러스, 알코올, 지방, 약물 등으로 70~80%가 파괴돼도 위험 신호를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 때문에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린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간암은 초기뿐 아니라 많이 진행된 경우에도 느끼는 증상이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 간암 말기에는 황달을 보이거나 심한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증상만으로 간암을 진단하기는 어려워 조기진단 및 근치적 치료를 위해서는 B형 또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만성 간질환 환자, 간경변증 및 간암 등 고위험군에게 정기적인 감시 검사가 필요하다.
연세암병원은 간암 치료를 위해 중입자 치료 활용 계획을 다양하게 수립했다. 중입자 치료는 초기, 국소 진행성 간암에서 4~12회에 걸친 소분할 치료가 주로 시행된다. 기존 방사선 치료로는 치료에 충분한 선량을 안전하게 주기 어려웠던 위치의 병변이나 간기능 저하로 인한 간부전의 위험이 있을 때 중입자치료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세암병원이 간암 중입자 치료에 활용 중인 회전형 치료기는 치료기 안에 환자가 누우면 가장 적합한 각도로 회전해 치료 계획에 따라 암세포를 타격한다. 360도 어느 각도에서도 조사(照射, 햇빛 따위를 내리쬠)가 가능해 정상 장기를 보호하고 종양의 치료 정확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익재 연세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교실 교수는 “국내 중입자 치료 시대가 열리면서 환자들의 치료법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면서 “연세암병원이 중입자 치료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써내려가는 새로운 암 치료의 역사를 기대해 달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췌장암과 간암 3기 환자를 대상으로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연세암병원은 지난 6월 폐암에 이어 올해 하반기에는 두경부암까지 치료 암종을 확대할 계획이다.
“부작용 낮추면서 종양 집중 치료”
-중입자 치료를 받은 간암 환자의 상태가 궁금하다.
▲현재까지 불편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없다. 다만 암은 5년 생존율을 따지니까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아직은 중입자 치료 초기 단계여서 현재 하루 8명 정도 치료를 하고 있. 향후 갠트리(치료장비) 2번방을 열게 되면 환자 수도 2배 정도 늘 것으로 보인다.
-중입자 치료는 주로 어떤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되나.
▲중입자 치료는 초기, 국소 진행성 간암에서 4~12회 정도에 걸쳐 시행된다. 기존 방사선 치료로는 치료에 충분한 선량을 안전하게 쏘기 어려운 위치의 병변이나 간 기능 저하로 간부전 위험이 있을 때 중입자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간암 환자가 중입자 치료에 적합한지 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암은 간경변증 등 만성 간 질환을 동반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병기, 간 기능, 간암 치료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간암 환자들은 매주 금요일 연세암병원 간암센터 중입자 치료 상담 클리닉을 통해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클리닉에서 환자의 상태를 일차적으로 점검해 중입자 치료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방사선종양학과에 협진을 의뢰하게 된다.
-간암 중입자 치료의 장점은 무엇인가.
▲중입자 치료 때 이용하는 탄소 이온의 질량이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월등히 무겁기 때문에 기존 치료에 비해 더욱 큰 암 살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방사선 저항성이 있는 종양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 간암을 방사선으로 치료하면 간 독성이나 인접 정상 장 독성 발생의 우려가 있고, 대부분 간암 환자들의 경우 간경화 등으로 간 기능이 저하된 경우가 많다. 중입자 치료는 중입자선의 독특한 물리적 특성으로 부작용 가능성을 낮추면서 종양 부위에만 고선량을 집중적으로 쏠 수 있다.
-간암 중입자 치료 시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환자마다 전이된 장기나 범위, 정도가 달라 주의해야 할 것 같은데.
▲간암의 위치가 위·대장·십이지장과 가까우면 치료가 어렵다. 중입자 치료는 고선량을 암 조직에 집중적으로 쏘기 때문에 파괴력이 커 정상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학제 진료(여러 과의 간 협진)가 필요하다. 간암도 항암 치료, 경동맥 화학색전술 등 여러 치료법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치료법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 일본의 경우 간암 치료 효과는 어땠나?
▲일본 군마대학병원에서 치료한 간암 환자의 2년 국소 제어율(치료 받은 부위에서 암이 재발하지 않는 확률)은 92.3%에 달했다. 일본 국립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QST)의 임상 연구결과 5년 국소 제어율은 81%를 기록했다. 특히 종양의 크기가 4cm 이상으로 큰 경우에도 2년 국소 제어율이 86.7%였고, 2년 생존율은 68.3%로 높았다.
“치료비 7000만···건보 적용 추진”
-중입자 치료가 어려운 간암 환자들이 있다면.
▲전이가 심한 환자나 과거 중입자 치료를 받아야 할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면 쉽지 않다. 중입자 치료도 방사선의 일종이니까.
-간암 중입자 치료 비용은 얼마나 드나?
▲6000만~7000만 원 정도 한다. 현재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밟고 있다. 앞서 일본은 1994년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했고 10년 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치료비가 우리나라 방사선 치료 비용 수준으로 낮아졌다.
-연세암병원은 중입자 치료와 항암제 등 기존 치료법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로토콜도 개발 중이라고.
▲발견이 늦어 수술이 어려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먼저 시행해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치료법을 어떻게 적용할지가 프로토콜이다. 필요한 경우 중입자 치료를 기존의 효과적이고 표준 치료로 알려져 있는 방법과 병합해 최상의 치료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프로토콜을 논의 중이다.
-앞으로의 각오는.
▲간암은 증상이 없어 초기 발견이 어렵다. 간은 바이러스·알코올·지방·약물 등으로 70~80%가 파괴돼도 위험 신호를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 ‘침묵의 장기’로 불릴 정도다. 중입자 치료를 간암에 적용하면 치료 성적은 물론 치료 가능한 환자 범위를 늘릴 수 있다. 다른 암 치료법과 시너지를 위한 연구 등을 이어가며 치료 성적 향상을 위해 힘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