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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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자리

고현진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엄마, 나 한국에 갈 거야.”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자신의 자그마한 가방에 장난감을 넣으며 대뜸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투명한 마음을 쉽게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들은 소식은 아버지가 사고로 크게 다치셨다는 것이었다. 타국에 있는 우리에게는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데, 속이 타들어갈 듯 아팠다. 한국행 비행기를 급히 끊은 그날 밤, 밴쿠버문학 신춘문예에 내려고 써 놓았던 소설을 다듬어 새벽에 메일로 보냈다. 한국에 들어가 아버지를 간호하며 지내던 정신없는 며칠이 이어지던 중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뻤다. 하지만 기쁨 아래로 잔잔히 내려앉는 정의할 수 없는 무거운 것들도 있었다.

함께 글을 쓰던 친구들은 등단하여 문단에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그들과 함께 탔던 배가 전복되어 나 혼자만 볼품없는 섬에 표류한 건 아닌지 자기 파괴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나는 그때마다 불안감은 내려놓고 계속 써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조급함과 열등감을 누르고 작가는 꾸준히 쓰는 일로 자기 증명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돌보며 글 쓰는 시간은 아주 제한적으로 주어졌고, 피로했지만 어느 때보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 시기와 맞물려 밴쿠버 신춘문예에 등단하게 되어 기뻤다.

협회에 입회하면서 혼자 글 쓰는 일에 제법 외로웠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문인협회의 선생님들과 모임에서 만나 교류하며 인생과 글쓰기의 가르침을 받아 위로를 누린 1년이었다. 든든한 친정이 생긴 것 마냥 마음이 풍요로웠기에 선생님들 모두에게 감사함을 한 아름씩 안겨드리고 싶다.

문인협회라는 울타리와 지면 게재라는 기회가 있어서인지 글쓰기에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하루 중 글 쓰는 루틴을 잡아가며 소설을 써내려간 것이 내게는 큰 변화이다. 24년에는 등단작과 밴쿠버 조선일보에 기재한 소설 두 편 외에도 두 편을 더 작성했다. 그리고 이번 2월에 밴쿠버 중앙일보 온라인에도 한 편을 기재하며 작년과 올해 초까지 총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협회에 등단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자리는 경계선에 있다. 여기에서 저기로, 나눠지는 선 그 위에 나는 글 쓰는 자리를 놓았다. 그곳에서는 변방의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걷고, 기도하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불안함을 토로한다.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여러 모양으로 점프를 하는 곳이고, 혈류병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잡으러 나아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나의 글쓰기는 어떻게 삶을 견디는 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삶을 견디는 장소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 손으로 젖히면 열리는 얇은 천 하나가 경계 사이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천은 현재를 싸우는 방식을 통해서 열린다. 나는 독자에게 미래의 문을 개방해주고 싶다. 다른 세계를 열 가능성이 있다고 문 옆에서 속삭이려는 것이다.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를 포착하면 나는 주저 없이 소설로 써내려 갈 것이다.

함께하는 문인협회의 선생님들이 있기에, 25년에도 유의미한 글쓰기가 계속될 거라 믿는다.

 

*허수경, 시 <늙은 가수> 中

 

편집자주: 한국 문인협회 밴쿠버 지부 24’신춘문예 수상자들에게 ‘등단 후 삶의 변화’를 물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단연 ‘만남’이었다. 문학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만남으로 각자의 삶에 자란 의미를 거두며 글을 쓴다. 또한 문학에 기대어 함께 걸어갈 벗들을 만나 삶과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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