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다’는 한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 그 꿈을 향해 나아가야 했던 수많은 노력의 시간들과 땀방울 그리고 좌절을 마주할 때마다 이겨내기 위해 삼켜야 했을 쓰디쓴 눈물의 맛도 들어있을 것이다. 인터뷰 내내, ‘의사 선생님’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모범생으로서의 일대기보다 그의 파란만장한 좌충우돌 스토리가 더 마음에 쏙쏙 들어왔던 이유는 바로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근성에 관한 이야기’ 였기 때문이다.

Q.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가정의로서 1차 진료와 함께 미용 레이저 시술을 겸하고 있는 Doctor Drip and Laser Clinic 원장 서성희 입니다.
Q. 가정의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학업이 우수한 학생이 차곡차곡 정해진 관문을 통과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제 경우는 특히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단대부고 3학년 재학 당시 가족들의 결정에 따라 밴쿠버로 이민을 오게 되었기에, 이전까지 의대를 목표로 학업에 열중하던 저는 참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낯선 환경 뿐 아니라 한국에서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을만큼 우등생이었던 제가 이곳에서는 언어적인 문제로 학업에 불편을 겪게 되니 자괴감이 컸어요. 그러나 그럴수록 더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든 길을 찾아나갔죠. 어린시절부터 변함없이 간직해온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일단 UBC에 진학해 2학년 때 싸이언스로 전과를 했고 복수전공으로 학사논문을 써 Honour로 졸업했습니다. 공부 뿐 아니라 UBC 응급실 자원 봉사 등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쏟아부었습니다.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곳과 미국 의대 입학에서 좌절을 맛보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내공 덕인지 짧은 준비기간이었음에도 한국의 경희대 의대에 합격해 학사 편입하게 되었습니다.그때가 1999년 이었네요. 그곳에서도 처음 적응은 쉽지 않았습니다. 편입생을 바라보는 편견에 외로움도 컸지만 묵묵히 공부해 실력으로 인정받으며 점차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졸업 후 삼성병원에서 인턴을 하면서 병리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병리학은 환자와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는 환경이 아닌, 주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분야라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결국 미국 의사면허시험을 준비했고, 총 4단계의 시험을 통과한 후 2008년 알칸사주 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도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보수적인 세력에게서 인종차별도 겪었고 한 밤 당직을 설 때는 의사로서의 희생정신보다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지요. 우수한 성적에도, 듣기에 그럴듯한 언어 능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나의 출생국과 국적 그리고 영어 이름에 대해 질문하던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영어이름을 버리는 순간,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당당할 수 있었고 그렇게 점차 나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며 자존감을 찾고 한층 더 실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더 자신감이 생겨 이후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돕고자 영어 스피킹에 관한 서적을 직접 저술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Q. 현재의 Doctor Drip and Laser Clinic을 오픈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아무래도 비자 문제 등 의사로서 일을 계속하며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와야 했기에 캐나다에 와서 다시 여러 절차를 통해 면허를 인증받고 마침내 가정의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안타까운 점들이 많았습니다. 가정의로서는 제대로 된 진단을 할 수 없는 상황들도 생기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의료 시스템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요.내 손으로 직접 시술할 수 있는 나만의 기술을 찾고 싶었고, 한국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학회 등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공부했던 피부 시술을 특화된 분야로 굳혀보고 싶었습니다.
Q. Doctor Drip and Laser Clinic에서는 어떤 시술을 받을 수 있나요.
의료 기기에는 의사만이 구입할 수 있는 클라스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모든 장비들을 더욱 안전하게 다루며 더 전문적인 시술을 해드릴 수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보톡스, 필러, 리프팅, 홍조, 기미, 박피 등 다양한 피부 시술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Q. 캐나다 의료계에 종사하시며 힘든 부분이나 안타깝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의료 서비스가 무료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겠지만 시스템을 봤을 때 안타까운 현실들이 많습니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의료 시스템은 발전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죠.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므로 이노베이션이 없다고 할까요. 그만큼 치료 시기가 지연되는 경우도 많고, 국가 비상사태에 의료 인력이 부족한 사태도 일어납니다.
Q. 이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말씀 부탁드릴게요.
앞으로 AI가 상용화 되는 시대가 오면 미국과 캐나다처럼 면적이 넓은 지역에서는 특히 의료 행위의 범위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의사가 되어도 무엇인가 내 손으로 직접 의료 행위를 펼칠 수 있는 특화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외과나 성형외과 등 사람 손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22년의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앞으로 변화하는 시기가 오겠지만 의사로서의 윤리와 책임감을 지키며 소신있는 의료 행위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가요.
현재는 가정의로서의 1차 진료의 비율을 줄이는 방향으로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다시한번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가정의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있으니 고국에서 개원을 하는 것도 다른 한가지 소망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달려온 만큼, 끝나지 않은 꿈을 향해 앞으로도 열심히 걸어갈 것입니다.
여성자신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