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전 세계를 강타한 음악 장르는 단연 K-팝이다.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 있지(ITZY), 엔하이픈(ENHYPEN), 에이티즈(ATEEZ) 등 대표적인 K-팝 그룹들이 미국 전역의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고, 블랙핑크(Blackpink)와 방탄소년단(BTS) 역시 활동 재개로 팬들을 환호케 했다. 하지만 이 열풍의 정점을 찍은 것은 다름 아닌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지난 6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 ‘KPop Demon Hunters’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K-팝 붐을 또 한번 증명했다. 해당 작품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를 기록하며 93개국에서 차트를 석권했고, 누적 조회 수는 3,300만 건을 넘어섰다.
빌보드는 이 작품과 OST에 대해 “팝 음악 팬들이 기다려온 진정한 2025년의 음악 현상”이라고 평하며, 극 중 등장하는 가상의 그룹 헌트릭스(Huntr/x)와 사자 보이즈(Saja Boys)가 실제 K-팝 그룹들을 제치고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는 해당 영화의 메인 곡인 ‘Golden’을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최고 원곡상(Best Original Song)’ 부문에 출품할 계획임을 밝혔다.
‘KPop Demon Hunters’는 음악과 칼날, 그리고 강한 유대감으로 무장한 세 명의 여성 아이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조이(Zoey), 미라(Mira), 루미(Rumi)는 가상의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이자 동시에 악령을 퇴치하는 사냥꾼들이다. 이들의 진짜 무기는 날카로운 무기보다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음악이다.
하지만 그들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아이돌 그룹 사자 보이즈가 나타난다. 영혼을 빼앗는 힘을 지닌 이 그룹은 헌트릭스의 인기를 위협하며, 차트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노리고 있다. 이 설정은 현실에서도 반복된다. 실제로 이들 가상의 그룹은 SNS와 유튜브에서 수많은 팬덤을 형성하며 춤 챌린지, 팬아트, 커버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로 이어지고 있다. 팬들은 이미 헌트릭스 멤버들을 현실 속 아이돌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진짜 K-팝을 담아낸 가상의 이야기
이 영화를 공동 연출한 매기 강(Maggie Kang)과 크리스 아펠한스(Chris Appelhans)는 모두 K-팝 팬으로, 이 작품을 “K-팝에 대한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다. 아펠한스는 “K-팝은 세계 최고의 팝 음악”이라고 강조했고, 강 감독은 “음악이 진정한 에너지이자 슈퍼파워라는 점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영화 속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다. K-팝의 세계관, 안무, 스타일링, 아이돌 문화 전반을 정교하게 재현했다. 멤버별 역할 구분(리더, 비주얼, 메인 보컬 등)은 물론, 라면컵에 인쇄된 멤버 얼굴, 버라이어티쇼 출연, 팬사인회, 수상식 무대까지 현실과 거의 구분이 어려운 수준의 묘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영화는 한국의 무속신앙(샤머니즘)에서 영감을 받아 판타지적 요소를 강화했으며, 짧은 몽타주를 통해 과거 한국 대중음악의 계보와 전통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K-팝이 단순히 ‘기계적’이라는 비판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정(情)과 공동체성, K-팝의 본질
미국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폴 김(Paul Youngbin Kim)은 블랙핑크 콘서트를 보며 무대 위 멤버들 간의 친밀한 스킨십과 팬들과의 교감을 통해 ‘정(情)’의 개념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는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한국 고유의 감정으로, 깊은 유대와 공동체 의식을 뜻한다. 김 교수는 “K-팝의 본질은 스타 한 명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간의 상호 의존성과 관계 속에서 빛나는 공동체성”이라고 설명했다.
놀랍게도, 실제 K-팝 아티스트들 역시 ‘KPop Demon Hunters’의 열성 팬이 됐다. 몬스타엑스 출신 원호는 극 중 캐릭터 애비(Abby)를 코스프레했고, BTS의 정국은 한 장면을 보며 라이브 방송 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K-팝은 이제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닌 글로벌 문화 현상이자 서사와 공동체의 힘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KPop Demon Hunters’는 그 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가장 창의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자료=워싱턴 포스트
정리=여성자신 편집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