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줄리아는 직접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과 아주 비슷한 피부병을 앓는 어떤 남자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항생제 치료를 받은 후 피부병이 생겼다고 했다. 줄리아도 처음 상처가 생기기 몇 주 전에 항생제 치료를 받았었다.
“이때부터 나는 피부병이 아니라 장에 탈이 난 것처럼 치료하기 시작했다. 유제품과 밀가루를 끊고 장에 좋은 다양한 유산균을 섭취하면서 전체적으로 건강하게 먹었다. 이 시기에 나는 여러 괴상한 실험도 했다. 당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더라면 그중 절반 정도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몇 주 동안 아연을 과하게 섭취해서 몇 달간 후각이 너무 예민해져 고생한 적도 있었다. 몇몇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 내 병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일종의 성공 경험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그 후 나는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줄리아는 이렇듯 17세에 원인불명의 피부병을 앓으면서 장과 소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의대 첫 학기에 어느 파티에서 입냄새가 심한 남학생 옆에 앉았다. 괴팍한 할아버지 입에서 나는 불쾌한 침 냄새가 아니라 설탕을 많이 먹은 아줌마 입에서 나는 시큼들큼한 냄새였다. 잠시 후 나는 자리를 옮겼다. 그 남학생은 다음 날 죽었다. 자살이었다. 장이 병 들면 악취가 나고 더 나아가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주일쯤 지나서 친한 친구와 이런 추측에 관해 얘기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친구는 급성 장염에 걸려 심하게 고생을 했다. 병이 낫고 다시 만났을 때 친구는 내 추측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살면서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면서.”
그 일을 계기로 줄리아는 장에 더욱 빠져들었고 장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분야는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논문 몇 편이 전부였는데 그사이 작성된 학술보고서만 수백 건에 달한다. 장이 건강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연구 방향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줄리아는 이 매력적인 분야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 2012년 의대생 신분으로 베를린, 카를스루에, 프라이부르크에서 열린 독일 사이언스 슬램(과학강연대회)에 참여해 ‘매력적인 장’을 주제로 1등을 휩쓸었다. 이 과학강연은 유튜브에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2014년에 독일에서 정식 출간돼 미국·프랑스·영국을 포함한 42개국에 장내 미생물 열풍을 불러왔다.
“의대에서 경험한 바로 미루어 볼 때 이 분야는 의학계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장은 매우 독보적인 장기다. 장은 면역 체계의 3분의 2를 훈련시키고 음식물로 에너지를 만들며, 20개 이상의 호르몬을 생산한다. 그런데도 장에 대해 자세히 배우려는 의사들이 별로 없다. 2013년 5월에 리스본에서 열린 ‘장 미생물과 건강’ 학회에 참석했는데 참석 인원이 한눈에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중 절반이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하이델베르크 같은 일류 대학이라 불리는 재정이 넉넉한 기관 소속이었다.”
줄리아는 학자들이 중요한 발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밀폐된 공간에 모여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물론 학문적 신중함이 성급한 발표보다 나을 때가 많다. 하지만 겁내며 머뭇거리다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 사이 몇몇 소화 불량의 원인이 장 신경계의 장애 때문이라는 주장이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불편한 감정을 처리하는 뇌 영역에 장 신경계가 신호를 보내면 그 사람은 이유도 모른 채 기분이 나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의사가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단순히 정신적 문제로 취급하면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될 수 있다. 이 사례는 연구결과를 더 빨리 발표하고 확산시켜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가 책을 쓴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많은 사람이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학자들은 연구결과를 밀폐된 회의실에 모여 토론하나 논문에만 기록한다. 나는 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널리 알리고자 한다. 장 질환을 앓는 많은 환자가 의학에 실망하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나는 기적의 묘약을 팔 수 없고, 건강한 장이라고 모든 질병을 낫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이 새로운 지식으로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개선할지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