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즐겁다.
여행은 즐기는 사람의 것이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 여장을 푸는 것 보다 짐을 꾸리며 들뜨는 설렘이 좋다. 마지못해 떠나는 것이라면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다. 꽃마차를 타는 여행이든 허접한 여행이든 기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떠나야 한다.
우리 부부는 이 나라 저 도시로 여행을 자주 다닌다. 다달이 주관하는 크고 작은 모임이 있지만 피해가며 다닌다. 여행하는 것도 삶의 또 하나의 과정이고 신선한 즐거움을 주기에 기꺼이 짐을 꾸린다. 각자 선호하는 여행스타일이 있다. 여행지의 유서 깊은 박물관이나 아주 특별한 곳을 샅샅이 메모하며 다니는 학구파적 여행, 여행가들과 담소를 즐기며 맛에 비중을 두는 미식가들의 식도락 여행, 근사한 주변환경과 수려한 호텔 등 멋과 편리함을 선호하는 호사스런 여행 … 이것들을 절충하여, 박물관 탐방은 물론 맛있는 음식에다 이왕이면 풍광이 멋진 호텔에 여장을 풀면 금상첨화이리라.
일부러 오지를 찾아 다니며 생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여행은 자기 힘으로 달리는 건장함이 있어야 한다. 주변사람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좀 더 젊었다면 나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되었을까.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은 베일에 싸여 있으니 속내를 벗기는 매력이 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가 현대문명과 동떨어져 있을수록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쪽이 궁금하고 인도야말로 알 수 없는 나라이다 “인류가 생활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모든 인간이 이 지상에 하나의 쉴 장소를 발견했다면 그곳이 바로 인도다 -로망롤랑- 사람들이 많이 찾는걸 보면 인간의 궁극적인 삶을 그곳에서 찾아어떤 위로를 받고 오는 게 아닐까. 신분상승을 할 수 없는 나라, 귀족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영원히 귀족으로 살고, 천민으로 태어나면 천민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 소름 끼치는 인간의 굴레이다. 그들은 대책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순후하게 받아들인다. 구걸을 할지언정 당당하다. 인간 내면의 생사를 떠받치고 있는 나라, 세계도처에서 현대 물질문명의 폐해에 찌든 많은 이들이 아직도 끊임없이 구원을 향해 인도를 찾아 가고 있다. 그들의 가슴속에 큰 무게로 자리잡고 있는 구원이란 대체 무엇일까.
우리의 생도 위태로운 기로에서 헤매기도 한다. 그때마다 구원을 갈구해야 하나. 가슴속에 응어리 하나쯤 떠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여행하는 순간만은 가벼이 내려 놓는다. 새로운 길을 찾는 또 하루의 아침이 열리기 때문이다. 거센 바람이 불고 천지가 요동쳐도 진정한 나그네는 길을 떠난다. 떠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다. 고고학적 연구를 위해 떠나거나 나만의 탐험을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행은 그냥 무조건 떠나는 것이다. 합리적 동기가 아무리 진지해도 열렬한 여행가에게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열린 길의 부름이나 다음 모퉁이 주변에 있을 알 수 없는 길의 매력에 끌려 여행을 한다. 길이 아닌 곳도 사람이 가면 길이 되듯이…
여행은 자신에게 주는 푸짐한 선물이다. 여행을 하며 펼쳐질 공상에 젖는 것도 혼자만이 누리는 소소한 기쁨이다. ‘여행은 떠날 각오가 되 있는자 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헤르만 헤세 가 말하지 않았던가. 여행을 하다 보면 앞서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믿음도 생긴다. 그들이 세상을 열고 어쩌면 세상을 이끌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꿈꾸고 싶은 자 꿈꾸게 하라. 오늘도 컴퓨터를 두드리며 다음 여행지를 고른다. 낯선 그곳에 이미 내가 가 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