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C 민사 소송, 이민법, 가정법 관련 사건을 전담하며 20여년 커리어를 쌓아온 유능한 여성 한인 변호사, 그것 만으로 그녀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한인 변호사로서는 드물게 저소득층 무료 변호를 자처했던 Pro Bono로서의 포부가 인상 깊었기에,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우나 강인했던 카리스마가 기억에 남아 있기에 여성자신 편집팀은 창간호 인터뷰 대상을 고민하던 중 무릎을 쳤다. ‘아름다움, 그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가장 자격있는 인물이 아닐까. 역시나 그녀는 ‘The W 여성자신’의 발행 취지에 깊이 공감했고 이 땅에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교민들, 특히 우리 세대의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괴 현실적인 조언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Naked’가 되겠다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목요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영사관 건물 5층에 자리한 그녀의 사무실을 찾았다.

Q. 7년만에 뵙네요, 그동안의 근황이 궁금했어요.
정말 잘 오셨어요.(웃음)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고 해드릴 이야기가 너무 많아 오히려 걱정이 됩니다. 그동안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련 뿐 아니라 값진 깨달음의 시간을 보냈어요.
Q. 탄탄대로를 걷고 계실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봉사하는 한인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가 탐 났거든요.
전혀 아닙니다. 나를 버리고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해 고뇌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토론토에서 공부해 변호사가 되고, 게다가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돕겠다며 Pro Bono 활동을 하는 훌륭한 변호사. 이렇게 보여지는 것들로 인해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다. 그런 오만이 내 속에 숨겨져 있었던 건 아닐까요. 어느 순간 모든 것에 회의가 몰려왔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Vancouver Island 외딴 곳으로 들어가 6개월의 ‘자발적 격리’를 감행했습니다.
Q. 그런 결심도 놀랍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했다니 부럽기도 합니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 오해할 수 있지만 전 정말 절박했어요. 나를 지탱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 변호사 자격증까지 반납했다면 조금 짐작 하실 수 있을까요. 갱년기라는 명목으로 호되게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거든요. 다행인 것은 남편도 심각성을 느껴 그 결정에 동의를 해준 것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정신적 방황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자녀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 곳에서의 유일한 낙은 명상 그리고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며 교감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나의 상처를 털어내듯 시를 썼습니다. 유년 시절의 기억들로부터 성인이 되며 겪은 시련과 깨달아가는 과정을 토해내듯 담은 일곱권의 시집을 완성했죠.

Q. 어떤 아픔들이 그런 결정까지 몰고 갔는지 조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변호사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제가 가진, 말하자면 일종의 도덕적 결벽증으로 인한 것이었죠. 때로는 정직하지 못한 논리로 소송을 걸어오는 상대가 있기에 그로 인한 분노가 일상까지 침투하기 일쑤였고, 또 안타까운 사건을 맡았을 때는 법적으로는 해결했으나 앞으로의 삶을 짊어지고 가야 할 의뢰인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정이입이 심했습니다. 이성적으로 감정을 제어하기 힘든 갱년기를 겪으면서 스스로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죠.
Q. 6개월의 칩거를 깨고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요?
다시 삶으로 돌아오려고 마음 먹었죠. 그 때 변호사 자격증을 회복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로펌이 이곳 Duplessis Law group이었어요. 삶은,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떤 끈 같은 것을 내려 이끌어 줍니다. 나는 비로소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시 삶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Q. 삶에 대해 깊이 사유한 흔적이 느껴지는 말들이 맘에 들어오네요.
맞아요. 자신의 삶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수차례 겪어왔으며 중년의 위기까지 경험했습니다. 알콜 중독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싱글맘으로 홀로 네명의 자녀를 양육해야 했던 어머니의 세월,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 조차 못할 고통을 겪은 뒤 결국 이혼한 폭력적인 첫 남편과의 기억들. 아직 마음에 남아 나를 가두었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의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모든 과정은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관조적으로 삶을 바라보면 오만도 자괴감도 사라집니다. 이제는 남도 나 자신도 평가하거나 비난할 이유가 없는 연민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Q. 변호사로서의 법적 조언 뿐 아니라 특별한 공감이 의뢰인에게도 힘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혼 문제로 찾아오는 의뢰인에게 드릴 수 있는 법적 조언은 이런 것이죠.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을 결심했을 때 흔히 생각하듯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캐나다에서는 ‘No Fault Ground’를 근거로 하기에 귀책의 유무가 소송에서 큰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이혼의 사유인 외도, 학대, 1년 별거 중 하나에 해당되면 이혼 성립이 되며 나머지 재산 분할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혼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투쟁하라 권하지 않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배우자이며 내 자녀의 부모이니, 그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가장 후회없는 합의를 해 서로의 관계를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습니다. 예외적으로 악한 사람들이 아닌 경우 대부분은 그렇게 원만하게 해결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의 경험과 진심어린 위로가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그건 내적 성취를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외적 성공을 향한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나의 삶을 다 만져보고 용기 내어 깊숙한 곳에 손을 넣었을 때 두려움없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의연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거듭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보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저의 계획은 성공을 위한 것 맞네요. 앞으로 다시 Pro Bono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고 이민법 관련 일도 본격적으로 맡게 되면 더 많은 분들 가까이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Q. 각자의 분야에서 성장해 나갈 교민 2세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어떤 자리에 있든 모든 것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과 성공, 혹은 쾌락과 도덕성… 이 모든 것들 중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도록 삶을 균형있게 이끌어 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Q. 혹시 말 못할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저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어려움 뿐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 순간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용기가 폭발하듯 분출되며 나를 지킬 수 있었죠. 그 뒤 전 제 가슴 속에 재규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를 믿고, 삶을 믿으면 삶이 나를 끌어준다는 것을 믿었으면 합니다. 용기를 내어 내 안의 재규어를 꺼내십시오.
그녀에게 빠져 어느새 세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꾸밈없는 미소와 빅허그는 따뜻했고 여성자신의 비상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써 넣은 그녀의 시집과 에쁜 마카롱까지. 오히려 마음을 꽉 채우는 선물을 듬뿍 받고 돌아서는 기분이었다. 과연 그녀는, 영혼을 나누는 변호사가 맞았다.
여성자신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