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야겠다. 발 품을 팔아서라도 ‘눈의 거처’로 자리를 옮겨야겠다. 얼음특별시 셔벗 자치구, 설산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베이스캠프라도 두어야 할 모양이다. 여름 나기를 유독 힘겨워하는 한 친구가 처방을 부탁해왔다. 둘이서 거기를 공략해 보자고. 의기투합 끝에 빙수전문점이라도 찾아보자고 했다.
스마트폰 액정을 옆으로 밀 때마다 습관처럼 고개도 움직이는 친구를 웃으며 바라본다. 맛집 앱을 뒤지다가 이건 뭐 소설 하나 고르기보다 힘들다고, 빙수가 언제 문학 장르에 도전했느냐고 투덜거린다. 빙수의 전성시대, 골라 읽는 재미가 있겠다. 그럼 베스트셀러 하나 골라 봐. 탐색에 들어간다. 눈을 뗄 수 없는 블로거들의 소개도 한몫을 한다.
‘홍차와 빙수가 만났을 때’, ‘빙수 이야기’, ‘호밀밭의 팥빙수’.
음, 가히 문학적이네. 빙수에 온갖 주재료를 앞세우더니, 이젠 웰빙 특수로 입맛을 자극한다. 메뉴를 보니 애플망고, 초코 바나나에서 더 나아가 흑임자 빙수, 두유 견과류 빙수, 오미자 빙수, 거기에 고사리 떡빙수 외에도 더 많다. 이 정도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긴, 빙수라는 이름 하나로 버티기엔 경쟁력이 없겠다. “뜻광 곶지 데니까 입맛이 변해진다”*고 하던 제주 출신 어느 셰프의 말도 떠오른다.
신인류, ‘호모 스마트쿠스’로 칭하는 젊은 층들은 빙수 하나에도 다이어트 칼로리에 경제적 가치까지도 꼼꼼히 따져 먹는다는 사실. 어플로 맛집 위치만 찾으리란 예상은 너무 낡고 단순한 생각이다. 빙수를 두고 욕망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탐욕을 억제하기도 어려운 모양. 위태롭게 토핑한 봉우리의 높이도 치밀하게 비교 분석해야 한다. 맘껏 누리려는 그들은 기가Giga에 좀 민감하다. 이미 머릿속에는 한껏 저장한 고봉의 신神들이 용량을 채우고 있어, 열대과일을 무제한 리필해주는 과일 빙수에 기氣가 산다. ‘빙수의 변신은 무죄’라며 오케이 사인을 한다.
우리도 한 곳을 찜 했다. 가기 전, 몇 명에게 번개팅도 제안한다. 곧 후발대가 도착할 것이다. 전진기지를 어디에 둘까, 적당한 자리를 물색한다. 여기저기 설산의 위용을 뽐내는 세계의 주봉들이 테이블마다 빛이 난다. 만년설로 대표되는 후지산, 레이니어마운틴, 에베레스트산까지 즐비하다. “히말라야는 인도가 섬이었을 때 지각변동이 일어나 힘을 보태어 밀어주었다는 설說”이 있다. 제일 젊고 높은 산맥, 우리는 더위엔 약한, 추위엔 강한 그녀를 선두로 밀어주기로 한다.
목록을 들여다본다. ‘신들의 나라’의 주봉들이 자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피트표시는 애교, 갖가지 형태로 치장한 캐릭터의 성향도 철저히 분석하는 대장, 역시 꼼꼼하다.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물보라를 맞고 있던 친구, 스폰지처럼 뭐든 잘 흡수하는 친구도 가세했다. 일찌감치 찜질방의 눈꽃방, 얼음방으로 피신해 에스키모 코스프레를 하는 선배들도 합류했다. 눈꽃빙수는 어쩐지 문학적이야, 순정만화 분위기네. 끄떡끄떡, 엄지 하나 올리며, 내 말에 동의해 주는 친구. 그것뿐일까. 단맛은 No, 심플한 걸 좋아하는 나와 옛날빙수를 같이 먹어주기도 한다. 초 간단 메뉴, 옛날 빙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게 한다.
어릴 적, 기억의 끄트머리에 작은 에펠탑이 달려있다. 아니 그건 너무 근사한가. 파란 철탑 구조물 같은 기계에 잘 생긴 얼음 한 덩이 올려있다. 손잡이를 돌리면 판에 올려놓은 얼음이 빙빙 돈다. 사삭사삭, 싸락눈이 받쳐놓은 그릇에 산처럼 쌓인다. 거기에 팥과 미숫가루, 빨강, 파랑 물감까지 뒤집어 쓴 ‘고깔모자’가 된 빙수를 손에 들고 마냥 좋아라했다. 아마, 이등변삼각형 높이를 구할 무렵이 아니었을까. 그때를 떠올리는 입들이 즐겁다.
이쯤에서 가벼운 논쟁 하나 시작된다. 빙수를 두고 노론소론이 확연히 갈라지는 분위기. 토핑이 화려할수록 맛도 좋다는, 자칭 빙수의 지존인 ‘부르주아파’, 씹히는 조각이 많을수록 미감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미식파’의 주장에선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먹는 법에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해가며 오로지 오감으로 즐기라는 ‘원형 고수론’과, 음양을 예로, 잘 부수어 섞은 다음에야 맛의 극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음양 조화론’이 팽팽하다. 결국 따로 존재해서는 의미가 없다는 인생론까지 나아갔다. 중요한 건. 더 이상의 설전이 필요 없다는 것. 먼저 해결할 과제가 눈앞에 놓였으니까.
테이블 위엔 잘 생긴 낭가 파르바트,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가 이미 도착해 있다는 사실이다. 원뿔 모양으로 우뚝 솟았다. ‘체 보고 옷 짓고, 꼴 보고 이름 짓는다.’는 말처럼 위세도 당당한 모습에 이름 또한 걸작이다. 모두 설산에 취하면 그만, 각자의 취향대로 오케이? 그럼, 별 영양가 없는 소모전도 사그라질 테니까.
눈 덮인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 위에 피어난 경치 아닌 경치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다가, 조심스럽게 첫 삽을 뜬다. 사그락, 기포가 사라지는 소리를 듣는다. 얼음 입자 하나가 부스스 떠내려간다. 초긴장, 스푼이 멈춘다. 아! 눈사태다. 삽질이 잦아질수록 작은 얼음산이 점점 고도를 낮추면. 우리들의 기온은 하강한다. 눈앞에서 눈꽃빙수 하나가 깜찍하게 자취를 감추는 것도 잠깐이다.
잘생겼다~, 잘 먹었다~. 한때 잘나갔던 광고, 천송이 전지현의 ‘잘생겼다송’을 한 선배가 랩으로 패러디한다. 은근히 중독성이 있더라 그 음악. 너는 이번에 히말라야 몇 좌 했니? 나는 셋. 쟤는 아이스커피와 빙수, 양쪽 간 보다가 실패. 영락없는 초보야. 까르르…. 그럼 우리 대장에게 어디 소감 한마디 들어볼까. 숟가락이 마이크로 변한 것도 잠시, 결국 오르면 설산은 무너진다고, 훈수 어린 ‘줌마’들의 입담에 사래가 들리지만 쿨하게 웃는다. 크륵, 킥킥, 하하하. 아! 히말라야를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도, 몇 년 전, 14좌를 끝낸 ‘오은선’도 이 시간만큼은 부럽지 않다.
옆 테이블에 커플이 앉았다. 말이 없다. 요샛말로 썸타는 중인가. 여자가 좀 뾰로통해 있는 것도 같다. 가만히 눈치를 보던 남자가 손가락 부채를 부치는 시늉을 한다. 몸이 먼저 말한다. 날씨만 덥겠는가. 그들의 원탁에도 크리스탈 볼 속에 한껏 융기한 ‘눈꽃산’ 하나가 떠올랐다. 조금 후면 냉기가 비강을 거쳐 정수리까지 신호가 오겠지. 절묘한 타이밍에 어깨가 움찔움찔, 진동이 올 거야. 이제 그들은 함께 주파수를 맞추고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까. 서로의 온도를 확인할 테고. 면역이 약한 그들이 서서히 적응해 가는 동안, 음양의 전극으로 감정을
조절해 가겠지. 차츰,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서로의 가슴에 물길을 내는 시간들이 올 테지.
한풀 꺾인 더위에 잠시 한눈을 판다. 느슨해진 마음이 생각의 망망대해에 누워 남극의 비밀을 청취하고, 북극의 전설에 귀를 기울인다. 삶의 영역이 다른 백곰과 펭귄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의 무한대는 언뜻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건 ‘신’들의 영역. 그럼, 그 시간이 오리라는 건 누가 귀띔해 줄까. 옆을 흘깃거린다. ‘빠름~빠름~’, 그들은 화해의 속도도 광고처럼 ‘LTE’급인가. 어느새 싱그러운 커플의 손가락은 깍지를 끼고 있다. 가만히 마음을
떠가는 청춘의 도둑고양이들이 에헴, 하고 수염을 만지는 여름. 이 순간이 그대들의 한 생의 여름이라는 것을. 그 모습은 너와 나,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이제 그들은 서로를 바라만보다가 ‘빙산의 일각’만을 본 채, 최선의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바다에 잠겨 보이지 않는, 얼음을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눈앞에 있는 줄 모르고, 자기의 마음을 조금씩 허물어 가는 시간들을, 조금 더 산 우리들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조용히 가라앉는 산, 그곳에서 너도 가라앉고 나도 가라앉는다. 우린 어쩌면 ‘설산’을 꿈처럼 먹고, 렌즈 너머 피사체처럼 한 조각, 마음에 담았는지도 모른다.
‘히말라야 원정대’ 해산에 앞서, 친구들이 봉우리 옆, 인증샷한 사진들을 밴드와 카톡에 올리고, 페이스북으로 마음을 전송한다.
어때요, 빙수 한 山… 하실래요?
* 오래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니까 벌써 싫증을 느낀다는 말 (제주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