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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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리야리 열무김치

박오은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구순을 넘기신 우리 문협 회원님이 텃밭에서 키운 열무를 가져다 주셨다.

아기 손가락같이 연하고 가녀린 열무를 보니 뭐든 만들어야겠는데 열무김치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U선생 손을 빌기로 했다. 씻고 절이고 필요한 양념을 준비하고, 경험이 전무한 고로 하라는 대로 따라 했다. 양념을 얼추 비슷하게 하여 살살 버무리니 색깔도 맛도 그럴듯하다. 실온에서 하루 이틀 숙성시켜 냉장고에 넣으란다.

  이틀 후   “요런 맛 처음이야, 만드는 게 쉬운 거야, 솜씨가 좋은 거야.” 칭찬 요법에 기분이 업 된다. 남편과 나는 한달음에 한 보시기를 먹어 치울(?) 수밖에 없었다. 맹랑하다 못해 발칙한 내 입맛도 수긍이 갈 정도다. 흔히 사서 먹는 진한 양념의 열무김치가 중년 쯤의 곰삭은 맛이라면 요건 풋풋한 10대의 맛이랄까. ‘풋내도 나지 않고 연하고 짜지도 않다.’는 남편의 칭찬이 위로다. 

  해마다 상추, 깻잎, 파, 방울토마토 … 텃밭에서 키운 어린 것들을 가져다 주신다. 받아먹는 게 송구하여 힘드시지 않냐고 이제 그만하시라고 하면, 아가들 자라는 모습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육체 노동을 하니 건강에 좋다고 하신다. 하기야 친구 얘기인데, 옆집 사는 할아버지가 울타리 나무 전지를 하고 계셔서 자신이 일을 돕겠다고 하니, “왜 남의 일을 빼앗느냐”며 질색 하시더란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며 …

  몇 해 전에 타계하신 탄천 선생님은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로 밥을 비비거나 국수에 말아 드시면 꿀맛 같다고 하셨다. 얼마나 좋아하셨으면 열무김치 관련 상큼한 글로 독자의 입맛까지 사로잡으셨을까.

  어릴 때, 매운 김치를 입에 넣었다가 눈물 콧물 쏙 빼던 기억, 친구의 국보급 김치 만들기를 흉내 내다 족보도 없는 김치가 되어 버렸을 때의 당혹감, 그나마 배추 겉절이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하루가 지나니 생생하게 살아 밭으로 돌아가려는 배추 님들의 반란 … 자신 있는 게 도사의 솜씨에 묻어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지적(知的)인 자가 김치를 잘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설픈 자가 헤매는 것도 아닌데, 별거 아니라는 김치가 내겐 왜 착 달라붙지 않는지. 세상에 무임승차는 없다. 뭐든 공을 들여야 실력이 단단해 지는데 노력 없이 기적을 바라는 건 당돌한 이기심이다. 하기야 주변에 도사들이 많아서 뽐낼 기회도 없었고 굳이 나서지도 않았다는 게 합리적인 나의 핑계이다. 

 
  살림을 야무지게 하는 알뜰한 친구가 있다. 그는 각양각색의 김치를 담가 주변 친구에게 나누어 준다. 왜 그렇게 진을 빼느냐고 하면 그저 웃는다. 그의 향기나는 미소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베풀고 나누며 사는 정이 얼마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지금은 푸르른 계절, 창밖에 여름이 가득하다. 수정 빛 하늘에 나의 첫 작품, 열무김치에 관한 ‘오늘의 사건’을 하나 덧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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