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이맘때 인 것 같다. 캐나다에 온지 12년만에 가족이 처음으로 한국 방문을 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참 기다려지고,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여행 경비를 조금이나마 절약하기 위해
직항이 아닌 시애틀을 경유해 가는 항공편을 택했다. 어린 아이를 동반해서 여행했던 어떤 이는
엄청나게 고생을 해서 경유해서 가는 것을 누구에게도 절대 권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애들은 이제
커서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결정이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불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생각하면 머리에서 현기증이 나는 듯하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과 같은
기억이다.
밴쿠버에서 인천공항으로 갈 때는 짐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이 바로 갈 수 있었고, 미국입국심사를
미리 다 받은 터라 별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한국에서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올 때였다. 한국에서 이것 저것 필요해서 산 물건들과 어머니께서 싸주신 짐이 더 해져 갈 때보다
여행 가방 몇 개가 더 늘어났다. 시애틀에 도착해 미국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같은 시간대에
도착한 다른 항공편이 많아서 그런지 기다리는 줄은 엄청나게 길었고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빨리 짐을 찾아서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 야 하는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마음은 점점 불안해 지고 조급해져만 갔다.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내 이름을 부르는 방송이 세 차례나
나왔고, 비행기에 탑승 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갑자기 하얗게 스크린이
내려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엄청나게 길게 늘어선 줄은
점점 타 들어 가는 내 마음과는 아랑곳 없이 꿈적도 하지 않았다.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사람은 단 세
명, 좀 더 유동성 있게 빨리 수속을 해 줄 만도 하련만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인천공항에선 스탬프를 찍는 것 없이 바로 지나갔던 빠른 입국심사 시스템과는
너무나 비교되었다. 결국엔 경유할 시간을 넘겨 버렸고, 모든 걸 포기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겨우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부랴부랴 수하물 창구로 여행가방을 찾으러 갔다. 다행히 한국에서 부친 짐들은
그대로 다 도착해 있었고, 한국항공사 승무원이 밴쿠버로 가는 다른 항공사의 티켓으로 교환해
주었고, 여행가방에 바뀐 태그까지 부쳐놓았다. 일단 다시 밴쿠버로 향하는 항공기에 짐을 부쳐야
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옆에 있는 칸의 레일에 가방 두 개를 넣고 나니깐 시애틀 공항에서 일하는
흑인 직원이 거기는 로컬비행기로 가는 거란다. 다시 되돌아 가서 찾을 수 없다고 나중에 밴쿠버 공항
가서 분실신고를 하라는 거였다. 물론 처음으로 시애틀을 경유해서 가는 거라 익숙하지 않았고,
시애틀 공항도 마치 미로 찾기를 하는 것처럼 너무 복잡하고, 번거로웠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겨우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서 시애틀에서 부친 가방들을 찾는데, 아뿔싸 잘못 부친 여행가방
두 개 말고도 또 하나가 행방불명이었다. 종종 공항에서 여행가방이 분실되는 일이 일어난다고
들었지만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는 게 너무나 황당하기도 하고,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고,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값나가는 물건이 아닌 아내의 옷가지들과 내 옷가지들이 들어가
있던 가방인데, 당장 불편함이 예상되었다. 어쨌든 공항에서 분실신고를 하고, 짐이 되돌아 오길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 밴쿠버 공항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우리가 시애틀에서 잘못 부쳤던 여행가방 두 개를
집으로 배달해 주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의 가방은 여전히 연락이 없었고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렇게 거의 2주가 지나고, 더 이상 찾는 걸 포기하다시피 하고 분실물 목록
신고접수를 준비 할 때였다. 한국 항공사 승무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는데 아내의 이름을 물어
보면서 혹시 여행가방을 분실하지 않았느냐는 거였다. 공항에서 아마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걸
우연히 승무원이 한국사람 이름이 쓰여진 것을 보고 용케 연락을 해 온 거였다. 아마 한국에서
밴쿠버로 출발할 때 처음에 가방에 달아둔 태그에 이곳 캐나다 주소와 연락처, 이름을 썼던 게 다행히
그대로 남아 있어 연락이 온 듯 했다. 너무나 반갑고 기쁜 나머지 계속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했다. 정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가방을 다시 찾게 된 것이 마치 집을 나간 아들이
되돌아온 것처럼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도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돌아오게 해 준 그 승무원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집, “잃어버린 여행가방”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사에서는 매년 1월 여행객들이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는 여행가방을 공개적으로 경매하는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만약 내 여행가방도 그렇게 되돌아 오지 않아 남들에게 공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내 흔적이 묻은 옷가지들만 널브러진 여행 가방 속에서 내 자신을 다
까발린 것 같아 너무나 낯설고 유쾌하지 않을 듯싶다. 더욱이 내 체취와 소중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물건들이 다른 누군가에 손에 마음대로 다루어 진다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다. 또한,
잃어버린 여행가방이 아니라 잊혀진 기억으로 떠나 보내야 하는 마음이 더 서글플 것 같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을 되돌아 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귀하고 값나가는 물건이든
아니든 간에 여행가방이 사라진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좋은 추억으로 남겨져야 할 여행이 아픈
상처로 남겨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여행가방이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원래 주인이 사용 했던 그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여행에서 기억되었던 감정과 남겨진 흔적들이 모두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듯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젠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어버린 그 때의 여행가방을 바라보며, 또
다른 여행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