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정한 화두,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무효다’ 내 SNS계정에 올려있는 말머리를 보고 지인들이 한마디씩 묻는다. “지금 당장 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편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냐”라고 질문한다. 그 물음 속에는 하던 일과 돈을 벌어야 하는 욕구를 포기하고 그냥 즐기면서 살아야 하느냐는 속내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속편한 소릴 한다며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반응들을 볼 때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화두를 정하면서 한 가지 약속한 것은 다음 병에는 절대 걸리지 말자고 작정했다. 여행, 휴식, 외식, 산책이나 지인들과 차 한 잔 나누는 여유를 다음으로 미루는 함정에는 절대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조금만 더 모아지면, 아이들이 성장하면 아니 자식들 결혼이라도 시키고 나면 여행도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유 있게 살아야지 등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합리화하는 다음 병에는 빠지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삶이 어디 생각처럼 온전히 다 살아지는가.
빅토리아에서 RV리조트를 운용하는 동안 백인들과 8년이란 시간을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 생활습관들을 유심히 볼 수 있었다. 선진국 사람들의 이미지와 달리 이곳의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것, 한국적 사고로 물질의 기준으로만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친해진 백인들과 얘기하다보면 한결같은 대답도 정말 통장에 돈이 없다고 말한다. 은행에 몇 천불 여유 있게 넣어 두고 쓰는 사람이 극히 적으며 한 달 수입은 그 달에 다 나가기 때문이다. 집도, 차도, 보트도 가전제품도 할부로 구입하는 게 대부분이기에 돈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할 것 다하고 즐길 것은 빼놓지 않는다. 대출받아 여행을 가고 그 것을 갚기 위해 또 열심히 일한다. 물질적인 기준으로는 분명 한국 사람들보다 부족한 듯 보이지만 그들의 삶의 질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선진국 사람으로 캐나다 식으로 내일보다 오늘을 만족하며 살아간다.
8월은 밀려드는 여행객들로 정말 바쁜 시기다. 가장 바쁜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직원이 갑자기 내일 오후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오늘 자정부터 별똥들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날이라 그것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까지 별들을 보고 오전에 잠을 자고 나오겠다는 얘기였다. 눈코 뜰 새없이 바쁜 주말에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너무나도 태연한 그의 표정을 보며 “와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나도 봐야지” 속에도 없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정이 되어 백사장에 가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에 담요를 덮고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똥들이 곳곳에서 떨어질 때 마다 탄성을 지르며 하늘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돈은 적게 벌더라도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이민 온 한국인들의 캐나다 생활은 어떠한가.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환경과 다양한 인종들 속에 동화되어 진정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을까? 내 주변에는 의외로 이 다음 함정에 빠져 있는 분들이 많다. 빈손이다시피 건너와 이민생활 전부를 비즈니스에 매달려 부를 이뤘지만 아직도 조금만 더 모아야 한다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행복이란 어떤 기준도 수치도 없다. 몇 센트 할인해 준다는 맥도날드만 찾아다니더라도 절약하고 더 모으는데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행복기준일 수 있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지만 자신의 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며 능력껏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그 사람의 행복기준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모으는 데 집중하는 사람은 늘 표정이 맑지 않고 불필요한 고민거리가 많다. 반면 오늘을 즐겁게 사는 사람은 늘 미소를 띠며 오지 않는 고민을 미리 앞당겨서 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는가 하면 늘 모으는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수 천 억 로또가 당첨돼도 레스토랑엘 가면 가격표부터 먼저 본다. 다음 병에 걸린 사람들의 특징이다. 몸은 비록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행복을 물질적 잣대로만 보는 한국적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습성일 수 있다. 열정적으로 바쁘게 사는 사람은 바쁘다는 소릴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부산하고 오지 않는 미래를 앞서 고민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많으면서도 늘 바쁘단다. 시간이 없어 바쁜 게 아니고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늘 분주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큰 부를 이뤄도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환경에 오직 최선을 다하며 그것을 재미있게 받아들이자. 일을 할 때면 오직 그것에 집중하되 이왕 하는 것 즐기면서 하자. 지금 산책을 하고 있다면 하늘과 바람, 나무 그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함께 동화되자. 여행을 하고 있다면 전화기는 꺼놓고 오직 노는 데만 신경을 쓰자. 어차피 집 떠나온 길 무슨 소식을 듣는다고 해결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분위기만 망친다. 누군가와 차를 마시고 있다면 오직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나누자. 지금 그 순간은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라면 한 그릇을 먹더라도 감사한 마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식사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어찌 내일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정의하고 싶은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무효다의 행복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