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은 나쁜 공기가 문제일까?
비염은 단순히 코가 막히는 질환이 아닙니다. 의학적으로는 코 점막에 염증이 생겨 재채기, 콧물, 코막힘, 후비루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을 말합니다. 비염은 크게 급성 비염, 만성 비염, 알레르기성 비염, 혈관운동성 비염 등으로 나뉩니다. 그중에서도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흔하고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형태가 바로 알레르기성 비염입니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특정 항원에 대해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하여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항원에는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동물 털, 곰팡이, 찬 공기 등이 있습니다. 캐나다는 공기가 깨끗하고 대기오염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봄·여름철의 강한 꽃가루 시즌, 건조한 실내 환경, 난방으로 인한 공기 순환 부족, 곰팡이 발생 등의 요인으로 오히려 알레르기 비염이 쉽게 유발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경우, 이전에는 접촉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역의 식물성 꽃가루나 동물성 항원에 대해 면역 반응이 과민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따른 항원 노출’은 새로운 알레르기성 비염의 원인이 되거나, 기존의 비염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즉, ‘공기가 깨끗한지’ 보다는 ‘항원 노출의 종류와 면역 반응의 강도’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만성 비염이 치료에도 쉽게 낫지 않는 이유
많은 비염 환자들이 약물 치료와 생활습관 개선을 병행하지만, 재발을 반복하거나 장기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비염을 단순히 코 점막의 염증 질환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면역 과민반응, 체질, 장 기능, 자율신경계 이상 등 전신적인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증상이 쉽게 반복됩니다.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제제는 일시적인 완화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나 효과 감소, 재발 문제를 동반할 수 있습니다.
비염의 한의학적 원인
한의학에서는 비염을 단순한 코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코는 폐(肺)의 기능과 직접 연결되며, 폐의 기운이 허약해지면 외부 자극에 대한 방어력이 떨어지고 비염 증상이 자주 발생한다고 봅니다. 또한 비(脾)의 기능이 떨어져 음식물 소화와 체액 대사가 원활하지 않으면 습담(濕痰)이 생기고 이것이 위로 올라와 코 점막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신(腎)의 부족은 선천적인 면역 저하와 관련되어, 성장기 어린이·노약자에게 흔한 비염 증상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비염은 폐·비·신의 기능 불균형, 그리고 체내의 열(熱)과 한(寒)의 부조화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염의 한의학적인 치료 접근법
대한민국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KM-CPG)
한의학에서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면역 기능 개선과 체질 개선을 중심으로 접근합니다.
① 한약치료
한약은 폐·비·신의 기능을 강화하고 체내 염증 반응과 면역 과민 반응을 조절합니다. 대표적으로 증상과 체질에 맞게 소청룡탕, 형개연교탕, 가미소요산 등을 활용하여 주 증상을 개선하고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치료를 합니다. 이 외에도 환절기 체력 보강용 보중익기탕, 소아 성장기용 육미지황탕 등이 체질과 상태에 따라 처방됩니다.
② 침치료
침은 염증 반응을 줄이고 비강 주변 혈류를 개선하여 증상을 완화합니다. 대표적으로 영향(迎香), 인당(印堂), 풍지(風池), 합곡(合谷) 등의 혈자리를 사용합니다.
③ 뜸
뜸은 비강 주변의 온도를 상승시켜 면역 반응과 주 증상을 개선합니다.
④ 기타 보조 요법
추가적으로 코 세척(생리식염수 또는 한약재를 이용한 비강 세척), 생활지도(알레르겐 회피, 실내 습도 조절, 수면 및 식생활 개선) 등을 통하여 재발을 방지합니다.
마무리하며
캐나다의 깨끗한 공기 속에서도 비염이 많다는 사실은, 비염의 원인이 단지 대기오염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한의학은 체질, 면역, 장부 기능의 균형을 바탕으로 비염의 뿌리를 치료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빠른 증상 완화와 함께, 장기적으로 재발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체질에 맞춘 꾸준한 한의학적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