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훌쩍이며 참치를 죽일듯이 짜내고 있는 내 곁에 사장님이 다가왔다.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자기야, 짜져? 안되면 할 수 없지” 하고 겸연쩍은 듯 나를 달래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좀전에 망친 참치를 발견했을 때보다 딱 두배 더 경악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는거야? 참치 땜에?”
아닙니다. 사장님. 참치 때문에 우는 게 아니랍니다. 하이힐을 신고 향수냄새를 풍기며 출근해 모닝 커피를 마시며 콧노래를 부르던 그 때의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눈물이 납니다. 점심시간에 팀장이 밥먹자 할까봐 화장실로 도망치는 길 후배 등을 떠밀며 “오늘은 네가 가” 했던 그때의 철없던 내가 참 우스워서 눈물이 납니다. 나이키 운동화에 명품 가방을 메고 들어와 앞치마를 두른 뒤 허둥지둥 숙련된 라인쿡 흉내를 내다가 결국 커다란 참치캔 하나를 몽땅 버리게 생겼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짜는 내가 너무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납니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건 사장님의 아련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자기는, 참. 울 일이 너무 없었나보다.”
나지막한 그 한마디는 한숨처럼 짧았다. 가슴에서 그냥 툭 터져나온 아픈 말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려운 시절 이민 와 남편과 함께 갖은 고생을 다한 끝에 마침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후, 자리를 잡기도 전 혼자가 되었다. 의지했던 남편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황망함을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있을까.
이 눈물이 그 눈물보다 가볍다 말하기는 억울한 면이 있으나 어쨌든 그녀의 한마디에 나는 민망한 눈물을 꿀꺽 삼켜버버렸다. “내 말투가 좀 그랬어? 미안…”
우리는 그냥 서로를 바라보다 피식 웃어버렸다.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고 나는 모자란 사람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좋았던 기억만을 들추며 수시로 감상에 빠지는 나약한 인간.
심리학에서 말하는 ‘선택적 기억’ 혹은 ‘긍정적 기억 편향’이 이런 것이리라. 내가 미화시켜 그리워하곤 하는 그때의 나는 분명 당당한 커리어우먼이었으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하루종일 쏟아져 나오는 분노의 화신이었으며 어느날 청천벽력처럼 나타난 낙하산 상사와 맞장이라도 뜨는 날엔 그에게 저주를 퍼붓느라 밤늦도록 술을 퍼부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어느새 사장님과 나는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Breakfast Sandwich를 만들고 있다. 소소한 수다에 웃음, 집에서 만들어오신 블루베리 잼을 Panini 빵에 발라 먹으며 평화롭다. 보이는 것이 다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마음에서 긴장의 끈을 놓고 진정 웃을 수 있는 휴식이다.
분명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사람 미소 뒤의 보이지 않는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 다른 어떤 의중을 품고 있는지 끊임없이 유추하며 다음 말에 대비해야 하는 시간은 참으로 곤욕스럽고 치열하다. 그 시절, 나는 그 치열한 퀴즈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그 음흉한 인간의 속내를 먼저 짚어내 방어했을 때 짜릿한 희열까지 느꼈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시간들 속엔 그런 인간도 있는 거였다. 약자에게 호통 치고 강자에게 굽신거리는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전형적인 캐릭터인 그를 후배들은 ‘틀딱’이라 불렀다. 틀니 딱딱의 줄임말이라나. 같이 웃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훗날 내가 저런 말을 듣는 상사가 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난 존경받는 선배가 될 수 있을까. 난 저 나이에 어떤 모습일까. 그런 저런 생각에 한가지 틀딱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절대로 저렇게 나이들지는 말아야지 하는 경각심을 매순간 느끼게 해주었으니.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 새벽부터 여덟시간을 정신없이 일 하고 난 뒤 대형 도마를 치우며 밖을 내다보면 열린 뒷문 틈으로 한낮의 활기가 전해온다. 다시 하루를 또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루를 반으로 나누어 두개의 나로 살아가는 것엔 묘한 쾌감이 있다.
불현듯 인기척에 고개를 드니 누군가 말을 건다. 다짜고짜 ‘물, 물~!’ 한다. 딱 보니 오십대 한국인 아줌마인데. 왜 나한테 물을 찾는 걸까, 게다가 말이 많이 짧다. 잠자고 있던 나의 그 무언가가 깨어나려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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