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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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빌역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7

지금 시각 새벽 5시, 1월의 차가운 공기가 도시를 감싸고 역을 향해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 행인들 뒤로 미명의 찬바람이 재촉하듯 또다른 하루를 열고 있다. 역사 한켠의 편의점 뒷문은 언제나처럼 약 3센티미터의 틈을 남겨두고 닫혀있다. Skytrain 입구를 통과하려면 교통 카드나 데빗 카드로 요금을 지불해야하므로 직원들은 이 뒷문을 이용해야 한다. 이 문은 내가 아직은 낯선 다른 삶의 현실로 들어서는 비밀스런 새벽의 문턱이기도 하다.

심호흡을 하며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발치에 걸리는 거무튀튀한 담요더미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벤치나 버스 정류장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던 다운타운의 잠든 노숙자를 이렇게 가까이 접하긴 처음인지라 약간은 당황스러웠지만, 다 식었거나 일찌감치 비어 있었을 Tim Hortons 커피잔을 보니 왠지 마음이 짠해져 발끝에 걸린 담요를 조심스럽게 밀어 보았다. 잠에서 깨어나길 도와줘야 하나, 계속 수면 속에 멈춰 있을 수 있게 놔두어야 하나, 잠시 갈등하는 사이 그가 뒤척이듯 꿈틀거렸다. 당황스런 마음에 도망치듯 가게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다.

햄치즈 크라상을 만들고, 미트볼 파니니를 만드는 내내 저 문 뒷편의 노숙자가 맘에 걸려 괜시리 고개를 저어본다. 어서 일어나 제 갈 길을 갔기를, 내가 한시간 뒤 재활용 박스를 내놓으러 나갈 때는 발치에 걸리는 그 담요가 사라져 있기를 바라며, 바쁜 걸음으로 들어와 드링크를 집는 손님들의 발소리, 냉장고 문 닫는 소리를 듣거나 아침 인사에 답을 하다가도 문득 ‘갔을거야’ 하고 되뇌이곤 한다.

이제, 재활용 수거 차가 오기 전 정리해야 할 박스들을 챙겨, 저 문을 열고 나갈 시간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안도의 숨을 쉰다. 그러나 이내 문 뒷편에 자세를 바꿔 웅크린 그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새벽의 적막을 지나 아침이 밝아오는데, 길 위에 잠든 그에게 이 새로운 날은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가 눈을 뜨지 않는 이유는 자신에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그저 또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가. 삶이 그를 버린 건지, 자신이 삶을 버린 건지 이제 와 알 수나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잔상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가끔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곱씹으며 과거의 선택들을 떠올리기는 할까.

이 겨울의 새벽 도심 한복판의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한 낯선 이의 삶에서, 왠지 낯설지 않은 외로움의 무게를 느낀다.

이 길 위에 멈춰 눈뜨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이 자리에 머물러 과거를 향해 돌아선 채, 뒤로도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멈춰선 내 두발 위로 멍하니 시선을 떨군다. 작은 한숨과 함께 뜨거운 것이 올라와 목이 메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이 낯선 길 위에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

박스를 재활용 수거함에 차곡차곡 올린 뒤 손을 탁탁 털어본다. 그리고 밝아오는 아침 햇살 끄트머리에 서서 찬 공기를 흠뻑 마신다. 잠시 멈춰있을 그의 삶이 눈 뜨길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무거운 철문을 있는 힘껏 닫으며 소리친다. “Good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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