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이민자 효과(The Healthy Immigrant Effec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주요 이민국가에서 자주 관찰되고 연구되는 주제로, 신규 이민자들이 처음에는 현지 출생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민 과정에서 경제적 여유와 철저한 바이오메트릭스(생체검사)를 거친 건강한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이민 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캐나다 통계청과 이민부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Longitudinal Survey of Immigrants to Canada)에 따르면, 이민자들의 이러한 초기의 건강한 상태는 지속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현지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악화된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캐나다 도착 후 6개월, 2년, 4년 등 총 세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신규 이민자 중 약 15%가 도착 후 첫 4년 동안 자신들의 건강 상태가 두 단계 이상 급격히 나빠졌다고 보고했습니다. 반면, 유사한 연령대의 캐나다 출생자 중에서는 약 6%만이 같은 수준의 건강 저하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여성, 고령자, 그리고 언어 능력이 낮은 이민자일수록 이러한 건강 저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이민자의 건강 저하, 왜 발생하는 걸까요?
이민 초기에는 건강 상태가 좋다가 점차 악화되는 원인은 매우 복합적입니다. 우선, 신규 이민자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여성 이민자와 난민의 경우 정착 과정에서의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언어적 장벽 등으로 인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 건강 문제가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또한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의 부족도 정신 건강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됩니다. 멕시코 및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은 초기 건강 상태가 현지 출생 미국인보다 우수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만과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입니다. 이를 흔히 라틴계 역설(Latino Paradox)이라고 부릅니다. 호주 역시 중국, 인도,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문화적 장벽, 사회적 차별 등으로 인해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다양한 국가에서 관찰되는 이 현상을 캐나다 보건부는 공식적으로 『이민자 건강의 사회적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Immigrant Health)』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호주와 영국 등은 적극적으로 이민자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송나라 시대에도 있었던 스트레스성 질환
이러한 문제는 비단 현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새터민이나 태국, 베트남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을 진료할 때 유사한 현상이 쉽게 관찰됩니다. 특히 여성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을 자주 겪는데, 이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한 문제입니다. 중국 송나라 시대(1107년), 당시 관영 제약기관인 ; 태평혜민국(太平惠民局);은 백성들의 건강을 위해 대표적인 처방들을 정리하여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이라는 의서를 편찬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소요산(逍遙散)은, 특히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답답함, 우울감, 화병(火病)으로 고통받던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처방입니다.
소요(逍遙)라는 이름은 거침없이 자유롭게 거닐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의 의사들은 스트레스와 억눌린 감정이 몸속 기운의 흐름, 특히 간(肝)의 기운을 막아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고 보았고, 소요산은 그런 간기울결(肝氣鬱結)을 부드럽게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억눌린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 자유롭게 거닐 듯 건강을 회복하라는 염원이 처방 이름에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요산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여성뿐만 아니라,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다양한 증상을 치료하는 데 폭넓게 활용되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문화적 생활습관 차이와 대사성 질환
정신적 스트레스 외에도,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문화적 생활습관의 변화(Cultural Lifestyle Differences)도 건강 악화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초기에는 건강한 전통적 식습관과 생활방식을 유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인의 식습관(패스트푸드 등)과 운동 부족, 자동차 중심의 생활습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로 인해 비만, 고혈압, 당뇨, 고콜레스테롤 같은 대사성 질환이 빠르게 증가합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한국처럼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아, 높은 혈압 수치나 당뇨같은 위험요소를 가진 이민자들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건강이 점차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모호한 개념과 캐나다 의료 접근성의 한계
우리는 흔히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캐나다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체지방, 자율신경 기능 검사 등의 기본적인 건강검진조차 쉽게 받을 수 없어, 우리 몸 안에서 스트레스가 조용히 쌓이고 신체적 불균형이 악화됩니다. 이는 마치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살인자와 같습니다.
이민 후 초기 4년이 지나면서 급격히 나빠지는 이 시기에, 한의학적 예방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수천 년 전 송나라 시대 여성의 마음을 치유했던 지혜를 그대로 간직한 소요산 등의 한약 처방은 이 시기 급격히 나빠지는 이민자 건강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체중 감량은 단순히 외모 개선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대사성 질환과 막연한 스트레스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이어야 합니다. 캐나다 이민 후 4년, 급격한 건강 변화의 중요한 시기, 이제 더 늦기 전에 한의학의 예방적 관리로 내 몸을 지키는 현명한 선택을 시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