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이 피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고개를 든 꽃은 상상보다 훨씬 더 짙고 깊은 보랏빛이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색, 생경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서고 싶게 만드는 빛이었다. 꽃잎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섬세한 결을 품고 있었고, 결 사이로 맑은 빛이 스며 속살까지 투명하게 드러났다. 가녀린 꽃잎은“나는 나의 시간을 견뎌왔노라”라고 선언하는 듯, 제 속을 숨김없이 드러낸 채 당당히 피어 있었다. 긴 겨울을 견뎌온 도라지는 마침내 자신만의 계절을 피워내고있었다.
한 달 전, 친구의 집에 초대받았다. 처음 마주한 그녀의 정원은 낯설었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낯섦은 특별함으로 바뀌었다. 배추, 부추, 고추 같은 익숙한 채소들이 이름 모를 꽃들과 어우러져 자라고 있었다. 보통 꽃은 꽃끼리, 채소는 텃밭에서 따로 자라기 마련인데, 그녀는 경계 없이 식물들을 섞어 키웠다. 무심한 듯 섬세한 조화는 서로의 다름을 품어 안은 삶의 풍경 같았다. 그녀의 정원 너머로 세상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날, 그녀는 도라지 한 뿌리와 상추 모종을 내게 건넸다. “한번 길러보세요.” 수줍게 웃는 얼굴에는 오랜 세월 식물과 함께 살아온 이의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늘 바라보기만 했지, 흙을 손으로 만지고 무언가를 키워본 적이 없었다. 작고 여린 뿌리를 받아 들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긴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생명이 내게로 온 것 같았다. 조심스러운 설렘과 함께 생의 무게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때는 도라지가 내 삶을 물들일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는 주말이면 도시를 벗어나 가까운 숲이나 호숫가를 찾았다. 자연은 일상의 틈 사이로 숨을 고르는 곳이었고, 식물은 감상의 대상이었다. 친구의 조언대로 도라지는 중간 크기의 화분에 따로 심고, 상추는 넓은 화분에 간격을 두어 나눠 심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잘 자라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은 식물에 보내는 응원이면서도, 내 안의 나를 다독이는 주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도라지보다 먼저 피어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 속에서, 나도 꽃처럼 피고 싶었다.
상추는 금세 줄기를 뻗으며 초록빛으로 싱그러움을 더해갔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은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반면 도라지는 잎만 촘촘하게 돋을 뿐, 봉오리는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긴 침묵 속에서 내 마음도 서서히 조급해졌다. 괜히 옮겨 심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흙이 맞지 않았던 것일지도. 햇살도 충분했고, 물도 거르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기만 한 걸까. 어쩌면 옮겨 심는 과정에서 뿌리가 다쳤는지도 모른다. 도라지를 걱정하는 마음에는, 멈춘 듯한 내 삶에 대한 불안이 겹쳐 있었다. 하지만 멈춤은 끝이 아니라, 뿌리가 깊어지는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밖으로는 아무 일 없는 날들이었지만, 뿌리처럼 보이지 않게 나는 자라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도라지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도 자기만의 리듬으로 자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 묵묵히 꽃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자신만의 결을 빚어낸다. 나 역시 이민 와 처음 몇 해 동안은 변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외로움과 막막함을 견디며 뿌리를 내리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도라지를 바라보며, 그 시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도라지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봉오리 하나가 희뿌연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초록빛에 감싸였던 봉오리가 오각형으로 갈라지며 보랏빛 꽃잎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연등처럼 매달린 봉오리들이 차례차례 열릴 때, 오래 눌러 두었던 감정이 터지듯 가슴이 울컥해졌다. 실핏줄처럼 얽힌 섬세한 결, 안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색의 농도는 도라지가 견뎌온 시간의 문양 이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결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꽃을 바라보다 문득, 첫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던 시절이었다. 옹알이를 기다리며 ‘엄마’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 졸이던 나날들. 설렘과 불안 사이에서 조급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이는 처음부터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어떤 이는 봄볕에 피고, 누군가는 여름비를 견디며 가을 끝자락에야 꽃을 피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저마다의 계절을 살아 내는 일이었다.
꽃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기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햇살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서도 제 결을 지켜내는 꽃처럼, 사람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안의 리듬에 귀 기울이며 조용히 견디는 삶. 그 끝에 피어나는 빛. 그것이 가장 깊고 진한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도라지꽃이 말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여도, 너는 지금도 자라는 중이라고. 너의 보랏빛은 이미 삶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말없이 마음을 물들이는 존재. 나만의 리듬으로 피어나는 삶. 오늘도 나는 피어나는 중입니다. 기다림을 품은, 나만의 보랏빛으로. 그리고 비탈진 시간 속에서도 기다림을 품었던 모든 순간이, 결국 사랑이었다는 것을 ㅡ 이제야 비로소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