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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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Arts Council 이 은 주 원장

“경계를 허무는 예술, 공동체를 품다”

물리적 국경은 지도 위에만 존재할 뿐, 예술은 언제나 그 선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다름을 이해하고, 보이지 않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동체 안의 균열을 치유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언뜻 이상처럼 보이지만, 이은주 원장이 걸어온 길 위에서는 하나의 실천이었다.

한국에서 연극 배우이자 교사로, 캐나다에서 예술 행정가이자 커뮤니티의 다리로, 예술을 삶의 언어로 삼아 온 그녀는 ‘경계를 허무는 예술’의 가치를 묵묵히 실현하고 있다. London Arts Council의 수장으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민자로서,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London Arts Council Executive Director 이 은 주

 

Q.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London Arts Council (런던 예술 위원회)라고 하는 비영리조직의 Executive Director(원장)이자 RBC Place London (런던 컨벤션 센터)의 이사로 있는 이은주라고 합니다. 부산의 경성대학교 연극·영화 학부에서 연극 연기를 전공하였고, 다양한 연극 작품에 배우, 연출가, 작가, 조명 및 음향 스텝 등으로 참여했습니다. 졸업 후, 부산영상예술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캐나다 이민 후에는 런던 웨스턴 대학교 예술 경영 준 석사 과정 (현재 비영리조직 경영과정으로 통합)을 이수하여 현재 근무하는 기관에서 2012년 인턴십을 마친 후, 2013년부터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기관의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2021년 전임 기관장이 은퇴를 결정함에 따라, London Arts Council의 이사진은 캐나다 전역을 대상으로 차기 기관장에 대한 공고를 내었고, 그 기회에 합격해 2021년 가을부터 원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관의 전반적 운영 및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 및 사업에 대해 크고 작은 결정에 관여하고, 주요 사업 및 협력 기관과의 전략적 동반관계 구축 및 유지에 관한 내용을 지휘하며, 이사진이 기관의 경영 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기관의 대변인으로서 다양한 인터뷰, 패널 논의 및 발표에 참여합니다.

저는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으며, 만나야 할 사람들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사람의 성장에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때로는 소소하거나 때로는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을 통해서 징검다리와 같이 연결되는 삶의 길과 중요한 삶의 변환점마다 안내자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이 바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다양한 사람들이다양한 모습대로 스쳐 지나가듯 만난 사람들도, 제가 많이 부족했던 순간에 만난 사람들도, 혹은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저의 길을 꾸준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Q. 예술과 함께한 여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린 시절 집안이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저희 부모님께서는 예술과 문화에 관련된 경험을 늘 제공해 주셨습니다. 다양한 책, 연극, 뮤지컬, 영화,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 등 당시 형편으로 많이 빠듯하셨을 텐데도 저희에게 창의적이고 유익한 경험을 채워주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술 전반에 대한 감사와 이해의 바탕에는 이러한 경험이 깔려있습니다. 예술은 저에게 있어서 소통의 언어이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확장할 뿐 아니라 대상 및 개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촉진하며, 자기 성찰 및 자가 치유를 통해 내면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예술적 경험은 저에게 현실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왔고, 이를 방증하듯, 제 경력 또한 예술이라는 구심점 아래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역할로 변화 및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과 캐나다에서 예술가이자 교육자, 예술행정가로서 커리어를 쌓아오시며 가장 뚜렷하게 느낀 문화적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캐나다는 기본적으로 인권 감수성이 높으며 보편적이면서 훌륭한 가치에 대한 공동체적 이해 아래 법과 제도를 단단하고 촘촘하게 잘 구축해 놓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안전과 관리에 대한 체계가 튼튼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숙고하여 만든 제도와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매뉴얼대로 진행할 수 있어서 안정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좋은 것을 도입하거나 불필요한 것을 바꾸는 데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여전히 주류 사회와 비주류 사회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있고, 다양한 문화가 존중이라는 이름 아래 물방울처럼 따로따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어서 이민자의 삶이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사회의 중심에 포함되지 못한 주변인과 같이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은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이며 탁월한 대중문화 및 예술에 대한 감각을 통해서 국제사회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성과를 내지만, 시간을 줄이느라 필요한 숙고 및 시험단계를 건너뛰어서 발생하는 빈약한 구조적 문제들이 있습니다. 또한 인권 감수성과 다름에 대한 포용 및 인정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발 빠르게 대응하여 이른 시일 내에 촘촘한 해결책을 냅니다. 그래서 늘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사회의 모습을 봅니다. 또한 국가적 불의가 발생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모두가 단결하여 상상치 못한 방식으로 국민이 주체가 되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한국인은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내며, 한국 사회는 높은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높은 목표를 설정한 후 이것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해 늘 노력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Q. London Arts Council의 Executive Director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철학이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술과 문화는 인간이 가진 창의성의 표현으로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술적 표현과 예술에 대한 참여는 모든 사람에게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관은 모든 시민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지역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신체적 등) 예술적 참여의 기회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예술 프로그램에의 참여에 대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 실질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술 서비스 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을 가지고 다양한 사회의 주제에 대해서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예술적 장치와 기회를 제공하며, 형평의 관점에서 기회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애물을 제거하되, 공평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확립하여 기회와 지원이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체계적인 시스템과 가이드라인, 그리고 메뉴얼을 갖추어 사업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원주민 커뮤니티와 관계를 맺고, 그들의 예술을 지원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계신데요. 이 협업의 중요성과 실제 프로그램에 대해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우리는 캐나다라고 하는 나라에서 이 땅이 주는 다양한 혜택과 복지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원주민 (Indigenous People)들이 관리해 온 땅이며, 유럽에서 건너 온 정착민들이 실시한 원주민 민족/문화 말살 정책 아래 그들의 인권과 삶의 전반이 크게 위협받았습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원주민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거주학교 시스템을 통해서 그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언어, 이야기, 문화와 예술을 강탈하였습니다. 거주학교 시스템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없어졌지만, 대를 이은 고통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구조적인 차별 아래 핍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이민자 또한 실상은 원주민이 관리해 온 땅에서 정착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원주민의 탄압을 위해서 만든 구조적 상황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모두 원주민 커뮤니티 삶의 개선과 복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기관은 2015년부터 진실과 화합 위원회의 리포트를 지역 사회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원주민 커뮤니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간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통하여 2021년부터는 다양한 원주민 공공 예술 사업을 통해서 지역민에 대한 원주민 커뮤니티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원주민 커뮤니티와의 관계 개선에 힘쓰며, 원주민 예술가들에게 멘토 역할, 코칭, 특별 프로젝트를 통한 전문적 기회 제공 및 전문성 개발 및 신장을 위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런던시를 대신하여 운영하는 예술 지원금 프로그램의 정책을 개선하여 런던시의 세금이 런던 주민뿐 아니라 런던을 둘러싸고 있는 가까운 First Nation 커뮤니티 예술가들의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시의원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EDI 미세 펀딩 프로그램을 통해서 원주민과 다양한 문화적 소수로서 기회의 다리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특별 예술 지원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관은 원주민 커뮤니티에 대한 초점이 기존 형평성의 담론에서 그들의 주권에 대한 담론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영토 인정 미술 (visual land acknowledgement), Indigenous London Arts 웹사이트 및 개별 로고, 그리고 특별 부서를 만들어 원주민에게 시각적이고 실제적인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우리 기관과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런던시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문턱을 낮추고 화합을 도모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구상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Q. 다양한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예술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순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런던 지역의 한 커뮤니티와 함께 공공 예술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커뮤니티는 우리 기관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있었고, 공공 예술 사업 정책에 따라서 우리 기관이 본인들의 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을 몹시 불편해하고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첫 미팅에서 커뮤니티의 리더 격인 사람들이 본인들이 느끼는 불편감과 편견 및 오해를 저에게 강력하게 표출했습니다. 어떤 합리적인 설명도 비틀어 듣거나 의도를 완전히 곡해하면서 우리 기관과 사업을 하고 싶지 않으며 우리 기관은 신뢰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사업차 진행한 미팅 해서 이토록 강력한 적의는 처음으로 경험했기에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 후에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우리 기관과 이 커뮤니티 멤버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저는 이곳에 분열을 조장하거나 투쟁하거나 당신들의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빼앗으려 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여러분과 ‘협력’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로는 협력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말씀드린 대로 여러분을 도와서 사업 예산을 확보하여 공공사업의 정책에 맞게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커뮤니티의 의견을 전극 반영하고, 커뮤니티가 의사 결정의 중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상하고, 합의된 바에 따라서 사업을 추진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제가 지금 드린 이 말씀을 곡해하지 않고 ‘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 “

다행히 이 말을 들은 후 모든 구성원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이후에는 그들도 진의를 곡해하지 않고 진실로 듣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았고, 저는 사업 진행 관련 내용을 수시로 대화하며 약속한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업이 끝날 때쯤엔, 그들이 저와 기관에 큰 감사를 표했습니다. 공공 예술 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커뮤니티와의 관계도 아름답게 봉합되었습니다.

 

Q. 개인적인 예술적 비전이나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저는 제가 가진 다양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완성하고, 그것이 만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또는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한국 정부가 문화 복원 사업을 통해 다양한 민간 이야기들을 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축해 놓은 덕에, 한국 문화가 가진 원재료를 매력적으로 살릴 수 있을 만한 많은 글감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두 자녀의 엄마로서 한 기관 원장의 삶이 벅차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만, 언젠가 때가 되면, 그간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내용을 글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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