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lusive Interview]
“두 세계의 심장을 품고, 다음 세대의 ‘숨결’이 되다”

연아 마틴(The Honourable Yonah Martin) 상원의원은 2009년 임명된 캐나다 헌정 사상 최초의 한인 국회의원이다. 21년간의 교직 생활을 거쳐 정계에 입문한 후, 상원 야당 부대표와 정부 부대표 등 요직을 역임하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특히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 제정과 ‘한-캐 FTA’ 체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최근 ‘한국 문화유산의 달’ 지정을 이끌어내는 등 캐나다 내 한인 사회의 위상을 높이고 양국 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 평생을 헌신해 온 대표적인 정치 리더이다.
밴쿠버의 겨울비 대신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는 아침, 오타와와 밴쿠버를 오가며 한인 사회의 지도를 그려온 연아 마틴 의원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주는 차가운 무게감보다는, 낯선 땅에 내렸던 어린 소녀가 어떻게 캐나다 입법부의 가장 따뜻한 심장이 되었는지 그 ‘마음의 경로’를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Happy New Year”이란 인사와 함께 포근한 허그로 마주한 그녀의 밝은 미소에는 인자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2009년 스티븐 하퍼 전 총리에 의해 임명된 후, 상원 야당 부대표라는 요직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희망’이었다.
곰 세 마리와 눈물의 기억… 이민자 여정의 시작
7살 생일, 그녀가 받은 선물은 낯선 땅 캐나다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4살 남동생, 18개월 여동생의 손을 잡고 도착한 캐나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모른 채 들어간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녀는 ‘곰 세 마리’에 대한 선생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계단 밑 한구석에서 홀로 울기도 했다. 그렇게 버틴 1년의 학교생활이 지난 어느 쉬는 시간, 플레이그라운드에서 놀던 중 불현듯 영어란 소음이 비로소 언어로 들려왔던 마법 같은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인내와 노력으로 단단하게 성장해, 훗날 UBC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21년간 교직에 몸담게 되기까지의 극적인 서사들은, 그녀의 정체성이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밑거름이 되었다.
“어떻게 대했는지가 기억될 것이다” 공공 서비스를 향한 부름
그녀에게 정치는 또 다른 형태의 ‘봉사’이자 ‘하나님의 부름’이었다. 이민자로서 자녀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했던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교회와 커뮤니티에서 묵묵히 봉사하던 그들의 가르침이 그녀의 뼈대가 되었다. 교사 시절, “캐나다는 봉사하는 나라라는 것을 배웠다”는 제자의 말은 그녀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정치인으로서 원내 수석부대표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으면서도 그녀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철학을 고수한다. “학생들은 당신이 가르친 과목은 잊어도,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평생 기억한다”는 믿음은 그녀의 리더십을 ‘사람 중심의 따뜻한 관계’로 이끌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 두려움을 이긴 도전
순탄해 보이는 길이었지만 좌절의 순간도 깊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 적성에 맞지 않는 이공계 공부를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고,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낙선하는 아픔도 맛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하원의원 낙선이라는 실패는 오히려 그녀를 하퍼 총리의 발탁으로 이끌었고, 캐나다 최초의 한인 상원의원이라는 역사적 자리에 서게 했다. 특히 그녀는 상원에 입성하기 훨씬 전인 2003년, 다음 세대 한인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캐나다 주류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C3 Korean Canadian Society’를 설립했다. ‘공동체를 잇는 다리(Bridge communities)’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비전이 담긴 이 활동은, 훗날 그녀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그녀는 젊은이들에게 ‘밴 다이어그램’의 원리를 강조한다. 자신이 타고난 소질과 정말 좋아하는 분야가 겹치는 지점을 찾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조언이다. 두려움을 무릎쓰고 ‘쇼잉 업(Showing up, 현장에 나타나는 것)’하는 것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 한국전 참전 용사와 레거시(Legacy)
수많은 의정 활동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한국전 참전 용사의 날’ 법 제정이다. 2009년 상원의원이 된 직후, 캐나다 달력에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날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보좌진과 함께 절박한 사명감으로 법안을 준비했다. 2013년 마침내 법이 통과되었을 때 참전 용사들이 흘린 눈물은 그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장면으로 남았다. 그녀는 2040년 임기가 끝나는 그날까지 한국전 유산 프로젝트(Korean War Legacy Project)를 이어갈 계획이다. “내가 아니면 누군가, 지금 아니면 언젠가 해야 할 일”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고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유산이다.
노이지 앱선스(Noisy Absence)를 넘어 투표의 힘으로
그녀는 한인 커뮤니티가 캐나다 사회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2세들의 시선에서 말하는 소위 ‘요란한 부재(Noisy Absence)’가 아닌,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투표’가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지금 가진 투표권은 과거 이 땅에서의 권리를 위해 앞장선 선각자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소중한 ‘의무'”라며, 당원 가입부터 시작해 작은 지역 선거까지 한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커뮤니티의 힘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용감했으니 당신들도 용기를, 시대를 넘는 뜨거운 응원
그녀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 땅에서 삶을 일구어낸 모든 이민자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민자의 삶은 때로 고통(Suffering)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을 통해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더 깊은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말한다. 뜨거운 여름, 얼음을 씹으며 힘든 노동을 견뎌냈던 어머니 세대의 희생을 기억하는 그녀는, 이제 그 바통을 이어받아 2세, 3세들이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되고자 한다. “우리가 용감했던 것처럼 당신들도 용기를 내길 바랍니다.” 참전 용사들이 남긴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한국계 캐나다인들에게 건네는 그녀의 진심 어린 응원이기도 하다.
연아 마틴 의원과의 대화는 정치적 담론을 넘어, 한 사람이 자신의 뿌리를 긍정하고 타인을 위해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감동적이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그녀 또한 깨달음을 얻어 자주 인용하는 ‘100%의 한국인과 100%의 캐나다인으로 두사람 몫의 힘을 낼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 안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믿어보게 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연아 마틴 의원은 랄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시를 나직이 읊조렸다. 7살 소녀가 낯선 땅에서 흘렸던 눈물, 부모님의 거친 손마디, 그리고 참전 용사들의 마지막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달려온 그녀의 17년 의정 활동은 결국 이 시의 한 구절을 증명해가는 과정이었다.
What is Succes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당신이 살았음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숨쉬기 편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이다.
“저는 제가 상원의원이라는 자리를 쫓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내게 주어진 비전과 부름에 응답하며,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갔을 뿐이죠.”
실패는 그저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Resilience(회복탄력성)’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녀가 남기고 싶은 유산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다. 다음 세대가 한국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 그 따뜻한 선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녀가 건넨 진심어린 조언들이 밴쿠버의 겨울 공기를 뚫고 따스한 온기로 가슴에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