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화백은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산다고 했다. 허나 바다는 보이지 않고 불한당 같은 갈매기 떼도 없는 그저 조용하고 한가한 곳이라고 했다.집에서 내린 커피에 얼음 몇 덩어리 넣고 나가면 얼마 안가 천국의 계단같이 수평선을 향해 길다랗게 뻗쳐 있는 나무 다리가 있고 다리 끝엔 어부 행세를 하고 있는 낚시꾼도 있으며 게 몇 마리 잡아 놓고 개선 장군처럼 의기 양양해 있는 소년도 만 날수 있다고 했다.
이강태씨가 독고 화백을 알게 된 것은 25년 전쯤 일이다. 그가 캐나다에 홀려 이민을 준비할 때 안 사람의 두 처형은 이미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태씨가 고국을 떠나 올 때는 장모님을 모시고 왔는데 얼마 안돼 지병으로 돌아 가시게 되었다. 형제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큰 처형이 알고 있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장례까지 치르게 되자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그 교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어느덧 봄 기운이 가시고 여름이라는 녀석이 어슬렁 걸이며 문턱을 넘을 때 삼형제 여섯 사람은 교회를 방문했다. 목사님은 반색을 했지만 강태씨는 몹시 당황했다. 널찍한 교회에 교인이라 곤 애들까지 합쳐 열 댓 사람이 전부였다. 허기야 큰 교회가 있으면 작은 교회도 있는 것이니까. 자리를 정하자 예배는 시작되었고 목사님의 설교는 처음부터 천지개벽을 하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목사님은 분명 한국 말로 말씀을 하시는데 달나라 얘기인지 별나라 얘기인지 가늠하기 힘 들자 자리를 고쳐 앉고 눈꺼풀을 덮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안사람이 허벅지를 꼬집는 바람에 깜짝 놀라 두리 번거리다가 동서들을 보았을 때 그들도 졸기는 매한가지였다. 벽에 걸린 시계는 예배가 한시간이나 지나고 있었다.
“이제 곧 끝나겠지” 벽에 걸린 시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교는 끝날 듯 말 듯 불꽃놀이를 하듯 계속 불 똥만 튀기자 강태씨는 슬며시 골이 났다. 허리는 시리고 화장실은 급하고 뜨뜻 미지근한 공기는 짜증만 불러 일으켰다. 결국 목사님의 모질고 질긴 설교는 두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끝이 났고 다음주에도 나오라는 당부가 있었지만 강태씨는 이를 갈며 뇌까렸다.
“내가 다시는 오나 봐라 ~ 도대체 멀쩡한 사람 잡아 놓고 뭐 하자는 거여?”
헌데 세상엔 알다 가도 모를 일이 있다. 하얀 이를 들어내고 무섭게 으르렁 대던 그가 어느 새털 구름이 하늘에 가득한 날 교회 한쪽 귀퉁이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 인가?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아이고 지는 세상 온 갓 때를 다 묻히고 살았는 디유?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 라.”
강태씨는 그 교회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독고화백을 만났고 그들은 공교롭게도 동향 사람이었다. 강태씨가 충남 예산이라면 독고 화백은 온양 온천이다. 두사람이 짧은 시간에 가까워진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어울리기만 하면 하나님 얘기로부터 자잘한 사생활까지 수다쟁이 할매 만큼이나 끝이 없었다. 어느 주일날이다. 독고 화백이 교회를 빠진 것이다. 예배 후 집으로 방문을 했을 때 두 부부는 눈가에 울던 자욱을 남기고 있었다. 무언 일이냐고 다그치자 안사람이 말을 한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고치려니까 중고차를 살 만큼 큰돈이 든다고 했다. 다만 고장난차가 올드카라 그 부속품을 수집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형 중고차 값은 받을 수가 있는데 어디를 가야 만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집에 여유가 없으니 그 수 밖엔 없다고 생각한 두 부부는 답답함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 후 판매 광고를 붙였는데 헌데 얼마 안돼서 맘씨 좋은 영감님을 만나 차를 팔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원 세상에 이럴 수가…?”
밴쿠버의 겨울은 물탕속에서 산다.
강태씨는 따분함에 지쳐 한숨을 짓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빗소리에 묻어 달려왔다.
“전화 받아 유~” 안사람이 방에서 악을 썼다.
잠시 후 강태씨가 들어서며 “목사님인디 독고화백이 떠났다는 구먼 …”
“어디 갔는 디유?”
“다니던 가구 공장이 문을 닫자 아무래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했는디 드디어 갔 구만, 헌디 전화 한통
없이 가는 기여” 발끈 성을 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가서 자리가 잡히면 연락이 있겠지…”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열흘이 가고 한달이 넘고 해가 바뀌어도 끝내 소식은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이 캐나다를 떠 난기여 아예 지구 밖으로 나간 기여”
그렇게 기다림의 세월을 되박질 하며 20년이 흐른 후 어느 화창한 봄날 강태 씨 부부는 마켓에서 쇼핑
마치고 나오려 는데 어디서 호랑이 우 짓는 소리가 났다.
“성 님 아이고 성 님 “누군가 하여 돌아보니 놀랍게도 독고 화백이 아닌가…?”
“아니 이 사람이…”
“성 님 지가 잘못 했시유 용서해 주셔 유…” 가슴에 안겨 엉엉 운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산기여…”
강태씨도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안타깝게 몸부림 친다. 마치 여의도 광장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처절한 모습이다. 궁금증 많은 구경꾼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자 강태 씨 안사람이 두 사람을 끌고 밖으로 나온다 강태씨가 눈으로 욕을 퍼 부으며
“자네 멱살잡이를 당할 끼여 꽁무니를 채일 끼여?
“아이고 두가지 다 하셔 유 지는 할말이 없시유…”
“아니여 그것 가지곤 안되겄네 자네 집이 어딘지 그리로 가세”
“알았시유…가유”
독고화백의 뒤를 따르는 강태씨는 몹시 들떠 있었다. 가는 길에 건물사이로 볼기짝 만한 바다도 보이고 여우 꼬리같이 길다란 수평선도 보였다.
“이 사람이 바닷가에 산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인디?”
한참이나 달리다가 키 작은 단층집이 늘어서 있는 골목을 지나 고만고만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만한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아이고! 집이 아름답구먼 좋아 ~~좋아~~”
“지 재주로는 어림도 없구유 안사람이 수고를 했지 유~~”
“자네 요즘 그림은 그리나?”
“일하다가 몸을 상해서 오래 앉지도 오래 서있지도 못해 유”
“그러면 낭팬 데…예전에 자네 안 사람이 이런 말을 했네 우리 신랑은 그림을 그릴때가 제일 보기 좋다
고 안사람이 집을 구 했으면 자네는 그림이라도 그려서 안사람을 즐겁게 해야 될께 아닌가?”
“그야 맞지 유 그런디 어쩌 겟시유”
“소처럼 길게 누워서라도 그려~`”
“아이고 누워서 어찌 그림을 그린데 유”
“그리라면 그려~~”
네 사람이 한바탕 웃고 나니 이십 년의 시공을 뛰어 넘고 있었다 독고화백이 말 머리를 돌린다.
“아이고 성 님도 이제는 머리에 하얀 배꽃이 피였구먼유…”
“자네 머리는 다 빠져 민둥산이 된 걸 모르나?”
“그것은 지가 성 님 한테 잘못해서 그렇지 유…”
“여보게! 우린 그동안 헤어져서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시린 가슴 달래고 살았응께 이제는 민둥산에 나무
를 심고 머리에 한얀꽃을 피우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 보세~~”
“좋고 좋지 유 핫 하하~~”
두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