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의 스카, ‘피터팬’의 후크 선장, 그리고 ‘슈퍼배드’ 시리즈의 그루까지.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속 악당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영국식 억양이나 동유럽식 억양 등 표준 북미 영어가 아닌 ‘외국인 억양(Foreign accent)’을 쓴다는 점이다. 대중매체 속 이러한 설정이 실제로 어린이들에게 특정 언어적 편견을 심어준다는 캐나다 연구진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토론토 대학교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존슨(Elizabeth Johnson)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학술지 ‘아동 발달(Child Development)’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만화 속 캐릭터의 억양이 아이들의 잠재적 편견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했다. 인기 아동용 영화 및 TV 프로그램 100여 편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 억양은 주로 부정적인 성격이나 악당 캐릭터의 목소리로 불균형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나이 들수록 강해지는 편견… 다문화 도시 아동도 예외 없어
연구팀은 광역 토론토 지역(GTA)에 거주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동일한 배우가 구사하는 여러 억양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영웅’과 ‘악당’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고르게 한 결과, 아이들과 부모 모두 악당 역할에 외국인 억양을 압도적으로 많이 선택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언어적 편견이 세 살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공고해진다는 사실이다. 5세 아동보다 13세 청소년 집단에서 외국인 억양과 악당 캐릭터를 연관 짓는 경향이 훨씬 뚜렷하게 관찰됐다.
존슨 교수는 특히 이번 결과가 토론토처럼 다문화 색채가 짙은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토론토는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가정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외에 한국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는 언어적 다양성이 높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미디어가 심어준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뜻이다.
단순한 취향 너머 고용·주거 등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
전문가들은 이러한 어릴 적 편견이 성인이 된 이후 실제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스펙트럼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정 억양을 쓰는 사람을 은연중에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덜 똑똑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면, 향후 취업 면접이나 주거지를 구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평가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UBC의 자넷 워커(Janet Werker) 교수 역시 영유아 시기부터 아이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신뢰감과 친밀도를 느낀다는 점을 언급하며 미디어 노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연구진은 ‘바다 탐험대 옥토넛’이나 ‘페파피그’처럼 다양한 국가의 억양을 가진 캐릭터들이 긍정적인 역할로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접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채로운 언어적 배경을 가진 캐릭터들을 편견 없이 묘사하는 미디어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