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직업이란 단순히 생계를 위한 활동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 실현을 위한 기반이기도 하다. 어린시절부터 꿈꿔왔던 ‘장래 희망’을 목표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행운이고, 게다가 그 한길만을 꾸준히 걸어와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다면 그건 누구나 바라는 행복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소명’을 말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27년 경력의 미용업계 베테랑,그녀를 만났다. 환한 미소와 함께 묻어나는 딱 보기좋을 만큼의 자신감이 ‘반짝’ 빛났다.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DZ Hair Salon의 Master Hair Stylist인 박은정 원장입니다.
Q. 미용업에 오랫동안 종사해 오셨는데,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꿈꿔왔던 일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늦게 미용을 배우셔서 미용실을 시작하셨는데, 사업이 정말 잘 되셨어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어머니를 보며 저도 “나도 크면 엄마처럼 성공한 미용인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할 때도 저는 항상 헤어디자이너 역할을 맡아 친구들 머리를 만져주곤 했죠.학창시절에는 꾸미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스스로 원하는 대로 머리를 바꾸고, 예쁘게 꾸미고,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어 했던 그 시절의 마음이 미용이라는 직업의 매력을 강하게 느끼게 했어요. 저를 예쁘게 꾸밀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저를 미용의 길로 자연스럽게 이끌었죠.
Q. 밴쿠버에 이민 오신 과정도 궁금합니다.
이민을 결심한 계기와 과정도 어머니의 도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캐나다에서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하고, 영국 비달사순에서 1년 과정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가 미용학과 교수로 활동할 계획을 세웠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미용학과가 막 생기던 시기였고, 그 길이 저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죠. 그런데 캐나다에 와 보니 이곳의 삶이 너무 좋더라고요. 혼자 외국에 온 상황이었지만,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고 부모님을 설득해 결국 캐나다에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 이후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겪었어요. 부모님의 보호 속에서 자란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혼자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시기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제 자신과의 싸움이자 내면을 단단히 다져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어요.
Q. 어떤 순간에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25살에 지금의 디지헤어(DZhair)를 오픈하면서 많은 도전을 맞닥뜨렸지만, 정말 좋은 고객들을 만났어요. 고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고, 그분들로부터 조언을 들으면서 제 인생에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흔들리고 힘들 때, 고객분들의 따뜻한 조언과 삶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기에 저는 제 길을 계속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미용이라는 일이 단순히 외적인 변화를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머리를 만지는 동안 고객분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위로와 공감, 때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일이 단순히 미용인이 아니라, 카운슬러 같은 역할을 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고객들이 제게 삶의 고민을 털어놓고, 그 속에서 제가 겪은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작은 희망과 용기를 전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어떤 분들은 저에게 머리를 하러 오는 시간 자체가 힐링이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예요. 고객분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나누는 그 시간이 저에게도 힐링의 시간이자, 서로에게 에너지를 나누는 순간입니다. 저는 미용이 사람의 외모를 꾸미는 일을 넘어, 내면을 치유하고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용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 제 삶에서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가진 이 미용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며, 제 손길로 그들의 하루가 조금 더 빛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 일이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제 삶의 사명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Q. 미용인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고객이나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매년 교회에서 주최하는 선교 행사에 참여하며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달란트가 미용이니, 이를 통해 누군가를 섬기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감사와 기쁨이에요. 평소에는 미용이 제 생업이자 돈을 버는 수단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봉사 현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경험합니다. 남을 위해 순수한 감사의 마음으로 머리를 해드릴 때,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더 깊은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올해는 어하우젯이라는 벤쿠버의 작은 섬으로 봉사를 다녀왔는데요. 나나이모에서 차로 3시간 이동해 토피노에 도착한 뒤, 다시 작은 배를 타고 4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고립된 곳이에요. 자연환경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그곳에 사는 분들의 얼굴 뒤에는 삶의 무게와 슬픔, 그리고 중독의 그림자가 느껴졌습니다. 특히 그곳의 많은 분들이 머리를 짧게 자른 채 방치한 상태였던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왜 그랬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한 여성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분은 1년 전에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고 하셨어요. 그들의 문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 자신의 소중한 머리카락을 자르는 관습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로 한동안 머리를 방치하다가, 마음의 정리가 된 후에야 다시 손질을 시작한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처음에는 손주의 머리를 다듬어주기 위해 오셨다가, 저희 팀의 따뜻한 사랑과 마음을 느끼셨는지 “저도 머리를 잘라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은 단순히 머리를 손질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딸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우울감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분의 머리를 다듬으며, 제 마음속에는 미용이라는 일이 단순히 외적인 변화를 주는 기술을 넘어, 누군가의 삶에 용기를 불어넣고 회복을 선물할 수 있다는 깊은 감사가 밀려왔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믿고 용기를 내어 맡겨주신 것에 대해 너무나 고마웠어요.그 순간 저와 제 팀 모두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도 눈물을 꾹 참으며 그분의 머리를 손질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일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특별한 순간이에요.
그 봉사를 통해 저는 미용이라는 기술이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선물임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미용이란 단순히 외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을 열어줄 수 있는 특별한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분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축복으로 다가왔습니다.
앞으로도 제 손길이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전하며, 그들의 삶에 새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단순한 미용인이 아니라, 삶의 변화와 회복을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사업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많은 비즈니스 오너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코로나 팬데믹과 락다운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에 남아요. 락다운 당시에는 수입은 전혀 없는데 고정적으로 나가야 하는 지출은 계속 쌓였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정말 큰 위기였어요. 하지만, 그 힘든 순간이 오히려 제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우선, 락다운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느낀 건 ‘내가 아무리 잘해도 외부 요인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 전에는 사업의 성공 여부가 내 노력이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깨달았어요. 사업이란 건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 경험은 제가 그동안 “내 것”이라고 꼭 붙잡고 있었던 디지헤어를 내려놓을 줄 아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 비즈니스가 정말 내 것이 아니구나, 언젠가 감사한 마음으로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겠구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변화하게 된 거죠.
또, 미용을 시작한 후 여행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던 제게 락다운은 두 달간의 쉼을 가져다주었어요. 처음에는 그 시간이 불안했지만, 오히려 제 삶의 또 다른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일을 넘어선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는 “언제든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얻게 된 점에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락다운 이후 많은 비즈니스 오너들이 겪었던 어려움 중 하나가 직원 고용 문제였어요. 정부 지원금으로 쉬는 것이 더 이득이었던 상황에서 많은 직원들이 일터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희 디지 팀은 달랐어요. 불법적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쉬는 편법 대신, “일터로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며 모두 함께 다시 일해 주셨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큰 감동을 받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에 생색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그 순간들이 디지헤어가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도전이 찾아왔어요. 디지헤어가 20주년을 맞아 재계약을 했는데, 렌트비가 무려 50% 인상되었거든요. 벤쿠버의 집값 상승과 물가 때문에 많은 비즈니스 오너분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겁니다. 함께 19년을 같이했던 스파 선생님들은 결국 이 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년퇴직을 선택하셨어요. 처음에는 너무 안타깝고 걱정이 컸지만, 되돌아보면 그동안 비교적 저렴한 렌트비 덕분에 안정적으로 운영해왔던 것에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할 수 있던 점에도 감사하며,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걸어가는 디지 팀에게 더 큰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경영은 단순히 제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윈윈하는 경영’이야말로 디지헤어가 20년 동안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디지 팀과 함께라면 앞으로 어떤 도전이 와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일의 성공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며 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 제 목표가 되었어요.
코로나라는 힘든 시기를 통해 배운 것은 “위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앞으로도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제 삶과 일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싶습니다.
Q. 미용업계 베테랑으로서 추구하는 가치관이 있나요?
네, 저는 미용 일을 시작한 지 27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일을 하며 두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첫 번째는 ‘배움과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한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 집중하며 꾸준히 미용 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20대였던 그 당시에는, 늦게 미용 일을 시작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내심 걱정하거나 안타깝게 보기도 했어요. 특히 40대가 넘어 스텝으로 시작하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늦지 않았을까?’라는 편협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몇 년이 지나, 그분들이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훌륭한 오너가 되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생각이 정말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는 단순한 숫자일 뿐이고, 오히려 늦게 시작했기에 결핍을 열정으로 채우며 더 깊이 있는 성취를 이뤄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제는 새롭게 도전하시는 분들께 편견 없는 시각으로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입니다. 디지헤어를 20년 동안 운영하면서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스태프들이 저와 15년 이상 함께 해주었어요. 그분들의 헌신과 믿음 덕분에 저는 이민자로서 캐나다에서 사업을 운영하며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두 아이를 출산하는 힘든 과정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를 가지는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모든 순간에 저희 팀이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제는 반대로 제가 받은 도움을 보답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이민 정착부터 출산,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제 스태프들에게 단순히 직장 상사가 아니라 든든한 서포터가 되려고 합니다. 관계라는 것은 단순히 이유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키고 함께 나아가는 것임을 배웠어요. 제가 그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제는 제가 그 자리를 지켜주고자 합니다.
결국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도전과 성장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과, 서로를 지키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의 중요성입니다. 미용이라는 일이 단순히 개인의 기술과 열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과의 신뢰와 연결 속에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두 가지 깨달음이 제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철학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분들께는 응원의 메시지를, 함께 걸어가는 이들에게는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동료로 남고 싶습니다.
정리=여성자신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