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에서 피어난 가장 무해하고도 아름다운 기록”
캐나다와 미국의 평화로운 접경, ‘북위 49도’의 이름을 딴 1인 출판사가 첫 문을 열었다. 30년 전 국경을 넘었던 소녀는 이제 이민 1.5세대 ‘경계인’의 정체성을 껴안은 채, 사라지기 쉬운 무명(無名)의 기록을 책이라는 단단한 세계로 옮겨낸다.
한국에서 글쓰기를 익히고 밴쿠버로 돌아온 작가는 낯선 땅에서 모국어로 뿌리 내린 이들의 생명력을 목격했다. 그녀가 내놓은 첫 책 <꿈을 그리는 용기>는 발달장애인 화가의 무해한 평화를, 이어 출간된 산문집은 이민 1세대의 깊은 사유를 담으며 세대 간의 가교가 되어준다. 글쓰기로 삶을 견디고 다시 살았다는 그녀가 전하는 ‘경계 위의 낭만’은, 타국에서 저마다의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정한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Q. 이민 오시게 된 배경과 여정, 그리고 1인 출판사 ‘북위 49’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민 온 지 올해가 서른 번째 해예요.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 국경을 넘었어요.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다는 부모님들의 바람이었어요. 친가 친척들이 오래전부터 미국으로 이주해서 살아오고 있어서 이민은 우리 가족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했어요.
유년 시절에 국경을 넘어서 그런 걸까요. 경계를 짓는 선은 언제나 마음을 일렁이게 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에도 속한 이민 1.5대 ‘경계인’으로 살며 한국과 캐나다 그사이에 머물렀어요. 덕분에 국경을 오롯이 넘지 못해 어느 나라 사람도 되지 못한 이주자의 마음과 사회가 그어놓은 선에 들지 못해 기우뚱거리는 삶이 담은 서사에 귀 기울이게 되었어요. 경계 위에서 사라지기 쉬운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에서 그 글들을 담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Q. 한국에서 8년 동안 글쓰기를 공부하고 돌아온 뒤,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어는 더 특별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모국어로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삶에 있어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캐나다로 돌아와 이제 더 이상 글을 배울 수 없는 건가, 슬펐는데 모국어를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토론토와 밴쿠버에서 온라인으로 만나 매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언니들과, 추천을 받아 입회한 한국문인협회 밴쿠버 지부 문인 선배님들도 계셔요. 글을 읽고 쓰며 모국어로 뿌리 내리는 분들을 보면서, 타국에서 살아가는 힘의 근원을 생각해요.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니 활자 가까이에 있는 행운이 있어요. 자신을 살피고 타인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삶의 태도로 정했어요.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라는 한 소설가의 문장처럼 나와 타인의 슬픔을 쓰는 일은 우리가 고통스러운 삶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진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삶을 잘 살고 싶고,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싶어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어요. 저는 글쓰기로 몇 번이나 살았다고 말해요. 글로 써서 표현하면 슬픔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고요.
Q.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인 북위 49도선을 이름으로 정하셨습니다. 작가님이 이 이름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캐나다와 미국을 가르는 선이자 세계에서 가장 긴, 군사적 긴장이 없는 국경으로 신뢰와 평화를 상징하는 경계선이에요. 일부 건물은 이 국경 위에 있어 캐나다와 미국에 걸쳐 있고, 한 공원에는 두 나라가 맞닿아 있기도 하죠.
도서 출판 ‘북위 49’는 이주의 경험을 넘어, 삶 곳곳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들을 주목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이름이에요. 경계 위에서 선 이들의 삶을 묶은 책은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했어요. 비주류이지만 반짝이는 우리의 고유한 목소리를 담고 싶었죠.
Q. 출판사의 첫 얼굴로 용기(Mr. YongKi) 씨의 그림책을 선택하셨는데, 장애인 전시회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부분이 작가님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용기씨는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만난 교회오빠에요. 25년만에 재회한 그에게 질문했어요.
“그림 그리는 거 좋아요?”
“응, 싸울 일이 없잖아.”
용기씨는 어떤 싸움을 하며 살아왔을까요. 자신과 가족, 이웃 그리고 사회의 편견과 화해하지 못한 채 지나온 그의 청춘이 스쳐 갔어요.
전시회에서 용기씨의 그림을 보고 저의 무명한 글과 그의 그림을 번갈아 생각했어요. 하늘과 호수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듯, 글과 그림도 전문가 만의 것은 아닐거예요. 우리는 모두 하늘과 호수를 누리고, 글과 그림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나 봐요.
Q. 책을 완성하기까지의 작업 과정 중 편집자로서, 혹은 한 개인으로서 가장 마음이 뭉클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람들이 용기씨가 저를 통해 그림책을 만들어 오랜 소원을 이뤘다 말하지만, 저 역시 그의 그림을 만나 삶에 의미를 더해가며 활자로 꿈을 꿀 수 있어서 무척 설레였어요. 어디에서 이런 무한한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부서진 마음들을 모아 드리는 기도예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고, 용기씨의 그림을 좋아해 주실 때 너무 기뻐요. 혹여나 저의 부족함으로 책에 누가 되질 않길요.
무엇보다 용기씨가 삶의 주체, 주인공으로 서는 일이 이토록 신나는 것인지 알아가고, 가족들이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장 뭉클해요. 이게 그림과 글의 힘이겠죠?
Q. 작가님은 이번 작업을 ‘무모하지만 낭만적인 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발견했으면 하는 ‘삶의 낭만’과 ‘용기’는 어떤 모양인가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독립 출판물을 한 권 낸 경험으로 출판사를 시작했어요. 누군가 ‘자격’을 묻는다면 한없이 작아질 테지만, 글과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데려다준 지점을 생각해요.
이 책은 낭만을 아는 용기 씨에 대한 책이에요. 그림을 그리며 발견한 평화를 선명하게 표현해요. 오랜 시간 눌려 있던 하나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의 색을 찾고 새로워졌지요. 그림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창이 생겼어요. 매번 인간의 쓸모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쓸모없음을 지향하는 그림이 주는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느끼면서요.
이 책은 또한 저에 대한 책이기도 해요. ‘쓸모없다’와 ‘아름답다’가 서로 모순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저는 오히려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일으킨다고 믿어요. 그래서 타인에게는 무해하되 무용한 삶을 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저는 이 꿈을 ‘삶의 낭만’이라 불러요. 무용함을 낭만이라 하는 것은 쓸모없음을 한탄하기보다는, 그 쓸모없음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버리는 문학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요. 우리 시대에 쓸모없다고 취급받지만, 인생을 반짝이게 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용기씨의 그림으로 담고자 했어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저녁 노을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다정한 마음과 기대어 쉴 수 있는 나무처럼요.
이 책이 쓸모를 강요받으며 애써 살아온 모두에게 닿길 바라요.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매일 더 유용해지기 위해 수고해 온 그대의 마음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낭만을 아는 용기 씨의 그림이 여러분을 평화의 마을로 이끌어 줄거에요. 이 책이 닿은 곳마다 아름다운 용기가 피어올라 각자의 삶이 낭만적인 축제가 되길요!
Q.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일이 있으신지, 또 앞으로 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나갈 예정인가요?
북위 49, 두 번째 책으로 이민 1세대 산문집 <사유의 정원을 거닐다>가 출간되었어요. 수필가 예주 민완기 작가가 스무 해를 써온 60여 편의 글을 모았어요. 타국에서 모국어를 지키며 또렷이 ‘나’로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담긴 글을 소개해요. 선배 문인이 모국어와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날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도 뭉클하고도 깊은 시간을 보냈어요. 이민 1세대의 글을 1.5세대가 엮어 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서로가 끊어 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한인 문인들의 고유한 문장을 담은 책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또한 장애인 친구들이 그린 그림에,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글을 쓰는 협업도 생각하고 있어요. 순수하고 귀여운 시선으로 가득찬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덧 지구 반대편의 또 다른 우리를 위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끝으로 여성자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여성 자신’ 독자들은 경계인 1세와 1.5세이실 텐데요. 북위 49의 두 책 <꿈을 그리는 용기>와 <사유의 정원을 거닐다>는 자녀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용기 있게 국경을 넘은 1세대와 경계인으로 자신의 존재를 평생 설명해야 하는 1.5세대에게 전하는 마음이기도해요.
‘똑똑한 우리 딸이 왜 성공을 못 했을까.’ ‘우리 아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수없이 하늘을 향해 물었을 우리의 부모님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우리는 각자의 결을 따라 빛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아 드리고 싶어요. 타국을 고향으로 만드는 1세대의, 뱃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와 땀을 먹고 자랐기에 우리는 강하고 자유해요. 마음 다해 감사해요!
-5월 16일은 <꿈을 그리는 용기> 출판 기념회 및 작품 전시회가 진행돼요. 용기씨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림과 책도 구매하실 수 있어요. (8150 207St. Union Park Club House, Langley 2pm-4pm)
-6월 27일은 <사유의 정원을 거닐다> 출판 기념회가 북콘서트 형식으로 열려요. (20740 Mufford Cres, Langley. 3pm)
‘북위 49’의 아름다운 두 책과 함께 열리는 축제의 시간에 ‘여성 자신’ 독자분들을 초대합니다.
-Instagram: @parallel49_press




